어디에 소망을?
딤전6:17~19
어디에 소망을?
17.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오늘은 경제 이야기로 말씀을 시작할까 합니다. 경제라고 해서 말은 거창하지만 실은 은행과 돈(화폐) 이야기입니다.
은행이 있기 전에는 금을 보관해주던 금 보관업자가 있었습니다. 금은 도난과 분실의 위험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거래시 주고 받는 데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보관업자에게 금을 맡기고 받은 보관증을 거래할 때에 사용하니 금을 직접 주고 받지 않아도 매우 편리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금 보관업자는 금을 맡긴 사람에게 보관료를 받을 뿐만 아니라, 금을 맡기지 않은 사람에게도 보관증을 발행하여 이자와 수수료를 챙겼습니다. 이것이 현재 금융시장을 석권한 영국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영국 런던에 세계 굴지의 금융기관들이 몰려있는 것입니다.
달러를 가지고 미국 중앙은행에 가서 금으로 바꿔 달라고 하면 바꿔주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금태환이라고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 주도로 시작된 브레튼우즈 체제로부터 1971년 8월 15일까지의 이야기입니다. 브레튼우즈 협정은 금 1트로이온스(troy ounce)(31.1034768그램)에 35달러로 고정시키고, 다른 나라 통화는 달러와 연동하는 달러 중심의 금본위제를 채택한 협정을 말합니다. 이로부터 미국의 달러가 우리가 잘 아는 용어인 기축통화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세계 금 값이 1트로이온스당 35달러를 훨씬 넘어 상승하게 되었습니다. 이 나라 저 나라, 여기 저기서 35달러를 가지고 와서 금 1트로이온스로 바꿔달라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중앙은행에 보관된 금이 바닥나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미국 닉슨 대통령은 1971년 8월 15일 주일(일요일)을 틈타 전격적으로 금태환 제도를 폐지했습니다. 이것을 ‘닉슨 쇼크’라고 부릅니다.
이제 금 보유와 상관없이 달러를 막 찍어낼 수 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전 세계적으로 파급되었습니다. 달러를 금으로 바꿔줄 때는 돈에 금이 연동되어 소위 값어치가 있었는데, 중앙은행이 인쇄로 마구 찍어내는(발행하는) 화폐(돈)은 사실 값어치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돈을 마구마구 발행하는 것입니다.
순서가 바뀌었지만, 은행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우리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은행에 맡긴 돈은 안전하리라 확신합니다. 집보다도 은행이 훨씬 든든하고 안전하리라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집에다 튼튼한 금고를 설치하고 거액의 돈을 보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부정한 돈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깨끗한 돈도 금고에 둔 사람이 있습니다. 이건 안전할까요? 은행에 맡기는 것보다 상당히 불안한 마음이 들겠지요?
쉽게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내가 은행에 1억을 예금한다면 은행은 이 1억을 금고에 잘 넣어뒀다가 내가 언제든 인출해 달라고 하면 주는 것일까요? 아니죠. 은행은 정부(중앙은행)가 정한 법정지급준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제외한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대출해 주고 큰 수익을 거둡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법정지급준비율은 7%입니다. 즉 내가 맡긴 1억에서 7%인 7백만 원만 은행에 보관하고 나머지 9천 3백만 원을 대출해 줍니다. 물론 은행 자체 판단으로 법정지급준비금 외에 일정 비율(금액)을 추가로 적립하지만, 큰 금액은 아닐 뿐만 아니라 은행 자율 사항입니다.
내가 맡긴 1억이 얼마로 늘어나 시중에 통용되는지 계산해보겠습니다. 1억×1/0.07=14.3억이 됩니다. 즉 내가 맡긴 1억이 14.3억으로 뻥튀기가 되어 시중에 돌아다닌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가정입니다. 만약 내일 전쟁이 난다거나 은행이 파산한다고 하면, 은행에 돈을 맡긴 모든 사람들이 일시에 돈을 인출하기 위해 은행으로 달려갈 것입니다. 이를 뱅크런이라고 합니다. 은행은 네 어서옵쇼 하고 돈을 줄까요? 안 주는 게 아니라 못 줄 것입니다. 줄 돈이 없거든요. 5천만 원까지는 예금 보장을 해준다니까 안심이라 생각하시나요? 정부에서 줄지는 모르지만, 은행이 그걸 줄 돈은 없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오늘 본문의 말씀을 권면했지만, 우리는 그로부터 2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틀림없이 들어맞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절감합니다. 안타깝게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유한 자는 대부분 자만하고(conceited), 거만하며(high-minded), 오만한(arrogant)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이는 일반론적인 이야기입니다. 많이 가졌어도 겸손한 사람도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돈에 비례하여 사람의 교만함은 늘어납니다. 돈을 많이 가지게 될수록 그에 따라 거만해지고 오만해지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부요한 자들(성도들)로 하여금 마음을 높이지 말도록 명하라(instruct/charge/command)고 했습니다.
제가 앞에서 길고 장황하게 설명했는데, 사도바울의 이 말을 설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정함이 없는 재물”입니다. 정함이 없는 재물이란 ‘불확실한 재물’ 내지는 ‘불확실성이 있는 재물’이란 의미입니다. 전자는, 돈은 돌고 돌아서 돈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내 수중에 있는 돈도 내 것이라 확신하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후자는 조금 전에 설명한 것처럼 은행조차도 믿을 수 없음을 그래서 우리가 소유한 재화도 늘 불확실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하물며 주식이나 펀드 같은 것들은 더 심한 예가 되겠습니다.
영문 성경도 공히 이 정함이 없는 재물이란 표현에 “uncertainty” “uncertain” 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불확실하다는 표현입니다. 마6:19~20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우리 믿는 자들은 이렇게 정함이 없는 재물에 마음을 두지(고정하지)(to fix) 말아야 합니다. 마음을 둔다는 말은 무엇일까요? 거기에 밤낮 정신이 팔려 있다는 말입니다. 자나 깨나 돈 생각 하는 사람(=자깨돈), 돈에 미친 남자(=돈미남), 돈에 미친 여자(=돈미녀)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진짜로 부를 누리며 사는 길을 제시합니다. 17b절입니다.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richly supplies/provides)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 풍성히 주십니다. 마6:33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설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무리 많이 주셔도 누리지 못하면 말짱 헛것입니다. 눅12:18~20입니다.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누리다’ 라는 말은 “to enjoy”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누리다, 향유하다, 즐기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등등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외국에 나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게 되면, 서빙하는 사람이 음식을 주고 선 enjoy! 라고 합니다. 전5:19입니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to enjoy)(NIV)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세상에 있는 것은 불확실한 것들 뿐입니다. 내 것도 내 것이라 확신할 수 없습니다. 건강도 내 것이라 확신할 수 있나요? 5분 뒤에 일어날 일도 알지 못하는 것이 우리 인생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의 소망을 고정해야 할 대상은 세상의 불확실한 재화나 물질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46:5) 할렐루야!
사도 바울은 18절에서도 17절과 같은 명령(instruct/charge/command)을 하고 있습니다.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는 “to be rich in good works”(선한 일을 하는 부자가 되고)(NASB) 라는 의미입니다. 선한 일을 하지 않는 부자는 성경이 말씀하는 진정한 부자가 아닐 것입니다.
가진 게 있다면(많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세례 요한이 말했습니다. 눅3:11입니다.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가난하게 살던 사람이 돈 좀 벌게 되었다면 어떻게 할 거 같습니까?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해서 이웃에게 베풀까요 더 움켜쥘까요? 단언할 순 없지만 대부분 후자일 것입니다. 돈은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이 가지려 하는 요상한 것입니다.
배고픈 형제와 이웃에게 빵을 나누는 손길을 거두지 않는 자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요일3:17)
우리가 단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사는 것만이 올바른 길은 아닙니다. 이는 소극적인 삶입니다.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선한 사업에 힘써야 합니다. 나누고 베풀어야 합니다. 나누어 주기를 좋아한다는 말은, 기꺼이 나누는(willing to share) 것을 의미합니다.
”너그러운 자가 되“는 것(to be generous)(NASB, NIV)은 무엇을 주는 데 있어서 후한 것이고,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 관대한 것을 말합니다. 또한 상대방과 마음 등을 소통하는 것(to communicate)(KJV)을 말합니다. 선을 행하고 나누고 베풀면서 소통하는 것을 의미하겠습니다. 많이 가지고 숨어서 나만 쓰면서 단절된 삶을 살지 말라는 말이겠지요.
이러한 일들은 결국 남을 위한 게 아니고 나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19절을 합독하겠습니다.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할렐루야!
19절은 영문 성경이 잘 번역하고 있습니다. “Storing up for themselves the treasure of a good foundation for the future, so that they may take hold of that which is life indeed.”(그들 자신의 장래를 위하여 좋은 기초의 보물을 쌓아 두어, 진정한 생명을 붙잡을 수 있게 하라.)(NASB)
“Laying up in store for themselves a good foundation against the time to come, that they may lay hold on eternal life.”(장차 올 때를 대비하여 그들 자신을 위한 좋은 기초를 쌓아 두어 영생을 붙잡게 하라.)(KJV)
“In this way they will lay up treasure for themselves as a firm foundation for the coming age, so that they may take hold of the life that is truly life.”(이렇게 자신을 위한 보물을 쌓아 올려 다음 시대의 굳건한 기초로 삼고, 그리하여 참된 생명을 붙잡을 수 있게 하라.)(NIV)
이제 말씀을 정리하고 마치겠습니다.
부요하다면 지금보다 마음을 더 낮추시길 바랍니다.
부요하지 않으니까 마음 좀 높여야겠다 이건 더 안 됩니다.
불확실한 돈에 목숨 걸거나 마음을 고정하지 마시길 축원합니다.
오직 우리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시고 소망을 두시길 축복합니다.
선한 일을 하시고, 선한 사업에 힘쓰는 부유한 자가 됩시다.
너그럽고 후하게 베풀며 소통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물질의 좋은 기초를 잘 쌓아서 장차 영원한 생명을 다 누리는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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