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을 하였으니
막7:24~30
이 말을 하였으니
24.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25.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26.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27.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8.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29.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30.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사람의 말에는 의외로 능력이 있습니다. 무슨 능력이냐구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일을 이루거나 얻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도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습니다.
습관적으로 긍정적인 말이 튀어나오는 사람은 만사를 긍정적으로 봅니다. 지갑에 돈이 만 원밖에 없어도, 만 원씩이나 있네 라고 하면서 이거면 짜장면도 먹고 커피도 한 잔 충분히 마실 수 있겠군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만 원밖에 없네 라고 하면서 이걸로 뭐나 먹을 수 있겠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자는 음식이 차려진 식탁 앞에서, 이렇게나 먹을 게 많아? 라고 할 것입니다. 후자는 뭐라고 할까요? 아니 이것 밖에 먹을 게 없어? 라고 할 것입니다. 누가 존중을 받고 대접을 받겠습니까? 물어보나 마나 일 것입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철없는 아이들이 얼마나 그러겠습니까만 부모에게 늘 고마움을 표시하고 말도 고분고분하게 하면, 부모 입장에서는 정말 키우는 보람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하는 말을 다 듣고 계십니다. 가나안 정탐꾼 열 명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원망했던 이스라엘 자손의 소리도 들으셨습니다. 민14:26~28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이런 말씀을 반면교사로 삼아 교훈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원망과 불평을 하는 소리를 들으신다면 반대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드리는 것도 당연히 들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귀가 번쩍 뜨이게 해드리는 놀라운 고백을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귀에 들린 대로 시행하실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기생 라합을 잘 아시지요? 좋은 표현으로 기생이라고 했지만, 그녀는 창녀(a harlot)였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이름이 예수님의 족보(계보)에 들어있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마1:5a). 라합은 다윗 왕의 고조 할머니(高祖母)가 되는 여인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정탐꾼 두 명을 보냈습니다. 라합은 자신의 집으로 온 정탐꾼을 숨겨주었습니다. 그녀가 민족과 신분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것은 정탐꾼들에게 한 고백 때문입니다. 이 말을 해서 살게 되었습니다. (밑줄 강조)
수2:9~11입니다.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들을 현장에서 보고도 믿지 못한 게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는데, 시간적으로도 멀리 있었고, 거리로도 먼 여리고에 있던 라합은 하나님을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하나님께서 라합을 택하시고 살려주신 것입니다.
후일 그녀의 며느리가 되는 룻도 라합 만은 못해도 그에 버금가는 고백을 함으로써 살게 되었습니다. 룻1:16~17입니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오늘은 계속 믿음의 여인들 얘기만 하게 되네요. 오늘의 주인공은 수로보니게 여인입니다. 예수님께서 두로 지방에 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집에 들어가셨는데, 이유를 알 순 없지만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했으나 숨길 수 없었습니다.
한 여인이 어떻게 알았는지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렇습니다. 궁하면 통하고 절박해야만 이룰 수 있나 봅니다. 여인은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the Syrophoenician) 족속이라고 했습니다. 수로보니게를 “Syrian Phoenicia”라고 지명으로 보기도 합니다. 주님을 찾아온 여인은 ‘시리안 페니키아’에 살고 있는 헬라인 여자였습니다. 같은 내용을 다루는 마태복음에서는 가나안 여자라고 했습니다.
여자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곧바로 찾아온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이었습니다. 여자에게는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인은 주님 발아래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을 늘 찾고 찾으시길 바랍니다. 주님을 찾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도 방구석에 있었으면 고침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내가 해결할 수 없는 힘들고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즉시’ 주님께 도움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두로에 온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하신 주님이셨지만 수로보니게 여인은 그러실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주님이 오셨다는 소식과 어디 계시다는 것을 알아내서 “곧” 찾아왔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여인이 와서 주님께 구하는 모습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한 마디도 대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가타부타 대답이라도 해주시면 좋은데, 반응을 하지 않으셨다는 것은 이 여자를 무시하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반응에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소리를 지르며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언제까지 구해야 할까요? 응답하실 때까지 계속 간구해야 합니다.
보다 못한 제자들이 주님께 청했습니다.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주님께서는 절박한 여인의 마음과는 거리가 먼 말씀을 하셨습니다. 27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주님께서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주님은 이런 분이 아니시잖아요 그렇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던 주님이셨습니다. 유대인 이방인 차별 없이 구원을 베푸시던 주님께서 이젠 마음을 바꾸신 걸까요?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부르짖는 여인에게 수치심을 불러일으킬 말씀을 하셨습니다. 졸지에 개 취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선 이 여인은 호락호락 물러설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28절을 합독하겠습니다.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여자는 주님이 뭐라고 하시던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절박했기 때문이었겠지요?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그냥 아픈 것도 아니고 더럽고 흉악한 귀신이 들렸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니 주님이 뭐라고 하시든 상관없이 구하고 또 구한 것입니다. 29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할렐루야!
라합과 룻이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고백을 했듯이, 이 수로보니게 여인도 주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놀라운 말을 했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하였으니” 그렇습니다. 여인을 살린 놀라운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인정하신 멋진 표현이었습니다. 아름다운 고백과 표현으로 늘 주님을 찬양하시고 구하시길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믿음을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여인을 믿음을 시험하시고 믿음의 고백을 이끌어내셨습니다. 성경에서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표현을 많이 한 사람이 있습니다. 다윗입니다. 주옥같은 시편 구절을 보십시오.
주님께 빨리 확실히 응답 받고 싶습니까? 오늘의 주인공인 수로보니게 여인과 같은 믿음의 놀랍고 아름다운 표현과 고백을 주님께 드리시길 축원합니다. 주님께서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고 마치겠습니다.
주님을 찾는 안테나를 늘 쫑긋 세우시길 바랍니다.
문제가 있을 때(생길 때) 곧바로 주님께 구합시다.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라고 구하시길 축복합니다.
언제까지 구해야(기도해야) 할까요? 응답해주실 때까지 구해야 합니다.
라합처럼 룻처럼 다윗처럼 우리 주님 마음에 꼭 드는 믿음의 고백을 하시길 축원합니다.
“이 말을 하였으니” 라는 칭찬을 듣게 되시는 모두가 되시길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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