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원고

4 플러스 알파의 믿음

paul han 2024. 3. 12. 05:48

2:1~12

4 플러스 알파의 믿음

 

 

1.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2.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3.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4.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5.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6.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7.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8.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9.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인생을 살다 보면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이런 일 저런 일을 당하기도 하고 겪기도 합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럴 때도 하나님께서 나를 훈련하시기 위해 그런 사람을 붙이셨다 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지기는 합니다.

 

반대로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유익을 준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해가 되거나 피해를 주는 존재가 된다면 정말 곤란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본다면, 혹시라도 내가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닌가 하고 조심하며 사는 사람은 절대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꽤 오래 전부터 한국 미국 일본 세 나라의 부모들이 어떻게 가정 교육을 시키는가 조크(joke) 비슷하게 나돌던 얘기가 있습니다. 미국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남에게 도움을 주면서 살아라라고 가르치고, 일본 부모들은 남에게 민폐(메이와꾸)를 끼치지 말고 살아라라고 가르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남에게 기죽지 말고 살아라라고 가르친다고 합니다.

 

사실 공부나 일이나 내가 기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해야겠다는 생각도 필요하겠습니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을 일군 그런 혁신적인 사람 한 명만 나와도 수백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으니까 말이죠.

 

오늘 교독한 본문은 여러 사람이 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어서 살려내는 자리로 이끈 이야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많이 전하고 들은 말씀이지만 다시 한번 함께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시간적 앞 배경이 되는 사건은 어떤 나병(한센병)환자를 고쳐주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을 보내시며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엄히 경고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가 마12:16~21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나가서 자신이 치료받은 일을 널리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지만, 사방에서 사람들이 주님께 나아왔습니다(1:45). 그러고 나서 수 일 후에 주님께서는 다시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고 오늘 본문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의 어느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렸습니다. 그 집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다고 했으므로, 그야말로 문전성시였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집에 입추의 여지 없이 모인 사람들에게 말씀(the word)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주님께서 이전에 안식일이 되어 가버나움에 있는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신 적이 있었습니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1:22)

 

그랬습니다. 주님의 말씀에는 권위(authority)가 있었습니다. 주님은 말씀의 권위자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분야에 어떤 사람을 권위자라고 인정할 때는, 그 사람을 그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로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말씀에 권위가 있다 라고 하는 것은 말씀이 완벽하다, 말씀에 정통하다, 말씀에 능력이 있다 등의 의미일 것입니다. 그 안식일에 회당에 있던 더러운 귀신 들린 자를 주님께서 고쳐주셨을 때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1:27)

 

서기관들의 가르침을 듣던 사람들이 이제는 권위 있는 새 교훈을 듣고 보게 되었고, 그것을 전하시는 주님께로 몰려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오늘 강단에서 말씀이 선포될 때 오직 진리만이 선포되고, 우리 주님의 능력과 권세도 함께 나타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람들이 주님이 계신 집으로 한 명의 중풍병자를 네 명에게 메워서 데리고 왔습니다.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 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은 네 명이 아닙니다. 그 이상이었습니다. 이 중풍 병자는 어느 식구 많은 집안의 어른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동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 명의 사람들이 그를 네 명에게 메워서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이 계신 자리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문 앞부터 사람들로 인해 막혔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상식이라면 사람들이 갈 때까지 아니면 주님께서 나오실 때까지 밖에서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지붕 위로 올라가 병자를 달아 내리기로 했습니다. 중풍 병자는 잘 아시는 대로 거동이 불편합니다. 몸의 반은 못 씁니다. 그런 환자를 지붕으로 끌어 올렸습니다. 네 명일지 그 이상일지 모르지만 그 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은 지붕을 걷어내고, 병자를 내릴 구멍을 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나오는 그 계신 곳은 그 집 전체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주님이 계시던 위 지붕(the roof above Him)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이 일로 놀라지는 않으셨겠지만, 말씀을 전하시던 그 집안은 먼지가 날리고 시끄럽고 굉장했으리라 상상이 됩니다. 오히려 거기서 말씀을 듣던 사람들이 놀랐겠지요. ‘이게 뭔 일이래?’ 하면서 말입니다.

 

우리 신앙이나 믿음은 때로 드러매틱(dramatic)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범한 이야기는 드라마가 되지 못합니다. 정말 말도 안 될 것 같은 스토리래야 사람들이 보는 드라마가 됩니다. 병자를 메고 온 사람들이 밖에서 주님을 기다렸다면, 이 사건은 성경에 기록되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씀을 전하시던 주님 앞에 중풍 병자가 누운 상(침대, 팔렛트, 매트)이 내려왔습니다. 5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할렐루야!

 

주님께서 누구의 믿음을 보셨습니까? 불쌍한 중풍 병자의 믿음을 보셨나요? 아닙니다. 주님이 오셨다는 소문을 들은 것도, 병자를 메고 주님께 나온 일도 모두 병자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었을지 모릅니다. 그를 주님께 데리고 온 4명 플러스 알파, 그들의 믿음을 보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꼬투리를 잡기 위해 주님께 나와서 앉아있는 서기관들이 마음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그들이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바를 곧 아신 주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이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한 분 외에 그 누구도 죄를 사할 권세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서기관들의 생각을 반박하시면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이것입니다. 중풍 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쉽겠냐? 이는 말의 길이가 어느 게 더 짧아서 알아듣기가 쉽겠느냐? 라는 의미입니다. 영어 성경도 같습니다. “Your sins are forgiven” “Get up, and pick up your pallet and walk” 보다 확실히 짧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의도는 확실합니다. 바로 주님께서 죄를 사하는 권세(authority)를 가지셨음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10). 눈치채신 분들도 있겠지만, 앞에서 언급한 말씀의 권위와 죄를 사하는 권세에서 권위와 권세는 같은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권위(authority) 있게 말씀을 선포하셨는데, 이는 곧 예수님 자신에게 죄를 사하실 수 있는 권세(authority)까지도 있음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이것을 반대로 말해도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를 사하실 수 있는 권세(authority)가 있는 말씀을 권위(authority) 있게 선포하셨다는 말도 됩니다. 할렐루야!

 

죄 사함의 권세가 있음을 선포하신 주님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갔습니다. 할렐루야!

 

사람들에게 들것에 실려 왔으며, 지붕을 통해 간신히 주님 앞에 내려온 중풍 병자는 누워 있던 침상을 가지고 자기 발로 걸어서 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누구의 믿음 때문이었습니까? 그를 데리고 온 사람들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셨습니다.

 

이 광경을 본 거기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사람들은 놀라고 놀라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앞서 서기관들은 네가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셨을 때, 주님을 보고 신성 모독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진짜로 병자의 죄가 사해졌고 그 결과로 병이 치유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로 눈 앞에서 본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사실은, 예수님께 진정 그 권세가 있음을 믿게 되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할렐루야!

 

말씀을 정리하고 마치겠습니다.

 

사람을 살리는데 4 플러스 알파의 사람들처럼 쓰임 받게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들이 없었으면 중풍 병자는 평생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환자를 불쌍히 여기셔서 치료하신 게 아니라, 그를 데리고 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치료하셨음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는 죄를 사하시는 권세가 있습니다. 주님께 나오는 누구든지 죄 문제를 해결 받게 됩니다.

 

주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매일 보며, 우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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