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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고

한 향기, 두 효과

고후2:12~17

한 향기, 두 효과

 

 

12.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13.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14.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17.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목회자나 평신도에 구분 없이 우리는 복음을 위해 사는 존재들입니다. 맞습니까? 생긴 모습이나 입고 다니는 모양새 같은 것으로는 세상 사람들과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거룩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벧전1:15~16입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거룩은 구별(구분)됨을 의미합니다. 세상과 구별된 자가 거룩한 자입니다. 어떻게 하면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첫째로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17:19). 할렐루야!

 

우리에게 진리가 있으면 거룩한 자가 됩니다. 진리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시대와 환경과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둘째로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20:32). 그렇습니다. 주의 말씀으로 든든히 세워진 자들이 거룩한 자들입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거룩하게 되어야만 복음을 위해 살 수 있게 됩니다. 세상 속에 파묻혀 물질만 추구하다가 어느 날 죽게 된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찌 설 수 있겠습니까!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난 후에 완전히 변하여 오로지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드로아는 바울의 2차와 3차 전도 여정에 들어가 있는 지역입니다. 2차 때는 드로아에서 환상을 보고 마게도냐로 건너갔고(16), 3차 때는 유두고를 살린 곳이기도 합니다(20).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드로아에 도착했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이렇게 말하고 있는 이유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지 못하게 된 것을 설명하는 중에, 이런 유사한 일이 더 있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주님께서는 바울이 드로아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셨지만, 디도를 만나지 못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바울의 마음이 편치 않게 되어서 드로아에 있는 성도들과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왜 디도를 만나지 못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복음을 전하는데 방해가 될 정도로 큰 문제였는지도 알 길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복음 전하는 일에 있어서는 천하의 바울이 단지 마음이 불편해서 다른 곳으로 갔다는 사실입니다.

 

이 일을 대하는 우리는 어떠해야 할까요? 한마디로 그럴 수도 있겠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이나 주님의 일을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인도하시고 열어주신다는 생각이 들지만, 마음이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과감히 그 일을 포기하는 결단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주님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생각으로 하려는 일이라도 마음에 평안함이 없고 불안하고 불편하다면, 그 일을 중단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맞았음을 지나고 나서 알게 되기도 합니다.

 

이상이 오늘 본문에서 찾을 수 있는 첫 번째 말씀입니다. 두 번째는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 향기를 풍기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말씀입니다. 14절을 합독하겠습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같은 절을 NASB로 보겠습니다. “But thanks be to God, who always leads us in triumph in Christ, and manifests through us the sweet aroma of the knowledge of Him in every place.”(그러나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승리로 인도하시고, 우리를 통해 모든 곳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달콤한 향기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항상 승리로 이끄시고, 우리가 있는 모든 곳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향기를 드러내게 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쓰레기가 쌓인 곳에서는 좋은 향기가 날 리가 없습니다. 악취만 있을 뿐입니다. 내가 쓰레기라면 좋은 향취가 날 수 있겠습니까? 나를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겨나려면 내가 그리스도의 사람이 돼야만 가능합니다. 쓰레기통에서 꽃향기가 날 수 없고, 아름다운 꽃이 가득한 꽃밭에서 악취가 날 리가 없습니다.

 

15~16절을 합독하겠습니다.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과 사망(멸망)을 가르는 기준임을 오늘 말씀을 통해 알게 됩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구원받은 자들끼리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주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점심 교제를 합니다. 그때 주구장창 자기가 키우는 개 얘기를 하는 성도가 있다면 그 사람은 개 냄새를 풍기는 사람입니다.

 

부동산 주식 등 돈 얘기만 하는 남선교회 모임이라면, 그리스도의 향기가 아니라 돈 냄새만 풍기는 사람들의 모임일 것입니다. 이런 냄새는 세상 밖에서도 질리도록 맡을 수 있는데 굳이 교회에서까지 맡아야 하겠는지요.

 

그리스도의 향기는 사람을 살리는 향기입니다. 넘어지려는 자를 붙들어서 살리는 길로 인도하는 향기입니다. 구원받는 자는 생명에서 시작해서 생명까지 이르는 사람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자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서로서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자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죽음으로 달려가는 자들에게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겨야 합니다. 물론 여기엔 세상 사람들에게도 우리가 하나님 백성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자들로서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하여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를 발산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구원받는 자들에게만 좋은 향기가 되는 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거역하고 멸망으로 달려가는 인생들에게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무시무시한 향기(냄새)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구원받는 자에겐 살리는 향기지만, 죽을 자에게는 죽음으로 이끄는 향기가 된다는 무서운 진실을 마주 시켜야 할 책임이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복음을 쉽거나 가볍게 대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싸구려 취급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얼굴을 돌리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무섭고도 두려운 사랑의 결정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우리는 구원받을 사람들에게나 멸망받을 사람들에게나 메시아의 향기입니다. 멸망받을 사람들에게 우리는 더 많은 죽음으로 이끄는 죽음의 냄새입니다. 하지만 구원받을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생명으로 이끄는 생명의 달콤한 냄새입니다.”(유대인신약성경)

 

저와 여러분이 반드시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명확해졌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자와 멸망 당할 자 모두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산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길 수 없음을 다시 한번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받아야 할 말씀은 이것입니다. 17절을 합독하겠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100% 순전한(pure) 말씀입니다. “주의 말씀이 심히 순수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119:140). 제아무리 순금이라고 해도 순도 100%의 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순도 100%입니다.

 

그런데 2천 년 전 사도 바울 시대에도 이렇게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100%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물을 의도적으로 섞었다는 말입니다. 혼잡하게 하다 라는 번역은 사실 너무 점잖은 표현입니다. KJV“corrupt”(변질시키다, 오염시키다)라고 했고, NIV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Unlike so many, we do not peddle the word of God for profit.”(많은 자들과 달리 우리는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싸구려로 팔아치우지 않았습니다.) NASB도 같게 번역했습니다. “For we are not like many, peddling the word of God”(우리는 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싸구려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과 딱 맞아 떨어지는 번역이라 생각됩니다. 소위 기독교 TV라는 모 방송은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망가뜨리는 선봉에 서 있고, 유튜브로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려고 혈안이 된 자들도 그에 못지 않게 하나님의 말씀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채널 숫자에 비례하여 말씀의 오염도는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권면합니다. 방송이나 유튜브를 멀리하시길 바랍니다. 나도 모르게 잘못된 길로 빠지게 됩니다. 유튜브에서는 찬양 정도만 들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내 교회 예배에 잘 참석해서 선포되는 말씀을 잘 들으시길 축복합니다. 그리고 집에서는 성경책을 펴서 읽으시길 축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거룩한 자들이 되어, 복음을 위해 사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일이라면 문을 열어주시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도 주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기도해도 계속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하다면 그 일을 재고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가 있는 곳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향기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우리는 구원받을 자들과 멸망 받을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산하는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점점 더 혼잡하게 하는 시대요 파괴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싸구려 취급하고 돈벌이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과 방송, 동영상 매체 등 모든 것을 멀리하시고, 예배와 말씀과 기도에 더 집중하시는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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