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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고

거기에서 먹는 자 누구? (사5장 Ⅱ)

5:8~17

거기에서 먹는 자 누구? (5)

 

 

8.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9.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주할 자가 없을 것이며 10.열흘 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 한 호멜의 종자를 뿌려도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 하시도다 11.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12.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 13.그러므로 내 백성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힐 것이요 그들의 귀한 자는 굶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라 14.그러므로 스올이 욕심을 크게 내어 한량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즐거워하는 자가 거기에 빠질 것이라 15.여느 사람은 구푸리고 존귀한 자는 낮아지고 오만한 자의 눈도 낮아질 것이로되 16.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정의로우시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으시리니 17.그 때에는 어린 양들이 자기 초장에 있는 것 같이 풀을 먹을 것이요 유리하는 자들이 부자의 버려진 밭에서 먹으리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자원(부동산, 동산, 금전 등)은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 경제의 제1원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분배하고 사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는 게 경제학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제한적으로 존재하는 자원을 남들보다 더 가지려는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그에 비례해서 더 많이 가지고 싶어하는 게 인간입니다. 이 욕심이 심해진(강해진) 상태가 되면 탐욕적인 존재가 됩니다. 이렇게 탐욕스러운 자들로 가득한 곳이 정글과 같은 이 세상입니다.

 

이러한 욕심을 끊어내지 못하는 한,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기는 어렵게 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따르기도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이렇게 일갈했던 것입니다.

 

3:7~14입니다.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초대 교회 부흥의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재산 나눔’(2:45)이었습니다. 이 시대에 집을 팔아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하면 아마도 교회에 한 사람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까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교회라면 각 가정에서 남는 음식, 의복, 기타 물품 등을 교회의 한 장소를 정해 쌓아두고 필요한 성도들끼리 나누면 좋을 것입니다. 아무리 큰 교회라도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니까요. 그리하고 남는 게 있다면 버리지 말고 교회 밖의 이웃들에게도 나눠준다면 좋겠습니다. 과일이나 야채를 파는 유대인들은 안식일이 시작되기 직전이 되면, 자기가 팔던 야채나 과일을 밖에 내놓아 필요한 사람들이 그냥 가져가게 합니다.

 

모든 게 너무나 흔한 세상이라 낭비와 과소비가 일상이 돼버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중국의 모 온라인쇼핑몰이 우리나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데, 거기서 구매하는 이유가 황당합니다. “당장 필요는 없는데 아주 싸니까 버리는 셈 치고 구매를 한다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버리기 위해서 산다이게 뭡니까!

 

지난 시간에 이어서 이사야 5장을 가지고 함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한 번에 안 되면 한 번 더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보신 7b절 말씀을 다시 한번 기억시켜드리겠습니다.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하나님께서 좋은 포도 열매를 바라시면서 심으신 이스라엘 족속과 유다 사람들은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는 자신들의 유익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들은 포악을 일삼았으며 어려운 사람들을 억압했습니다.

 

놀랍게도 사람들이 피를 흘리게 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힘겨워 부르짖게 하면서 한 일은 이런 일이었습니다. 8절입니다.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집을 크게 크게 하고, 땅도 넓게 넓게 가지려 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주변에 아무도 없게 만들어 혼자 살고 싶어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그렇게 된 게 아니라 남들에게 큰 피해를 주면서 집과 전토를 넓혔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오늘날도 별반 다르지 않음을 많이 보게 됩니다. 신앙 생활을 수십 년 한 자칭 신실한 성도들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들을 가리지 않고 피눈물을 흘리게 하면서 재산을 축적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제가 항상 말씀드립니다. 한 번 따라 합시다. ‘조금만 손해 보며 살자많이 손해 보시라고는 안 합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조금씩 양보하고 손해 보고 나눠주며 사시길 축복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9~10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주할 자가 없을 것이며 열흘 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 한 호멜의 종자를 뿌려도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 하시도다

 

그렇게 많이 지어놓은 집들이 황폐하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크고 화려한 집을 지었어도 거기에 살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며칠 전 뉴스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 가구가 천만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사는 집이면 10평 정도면 족하리라 생각됩니다. 더 커도 관리하기만 힘들고 비용만 많이 들어갈 뿐입니다. 전국에 지어놓은 큰 아파트들이 애물단지가 될 날도 머지 않았습니다.

 

열흘 갈이 포도원의 크기를 영문 성경은 공히 ten acres(10에이커)라고 했습니다. 1에이커가 약 4천 평방미터이므로, 10에이커는 약 4만 평방미터(12천 평)가 됩니다. 그렇게 넓은 포도원에서 거두는 포도주는 한 바트(22리터)에 불과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10에바가 1호멜이므로, 땅을 욕심껏 넓혀서 종자를 심어도 종자의 1/10만큼밖에 못 거두리라고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농사가 폭망이라는 것이지요. 종자의 10배를 거두기는커녕 1/10밖에 못 거둔다면 농사를 짓지 말아야 아니 지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큰 집에 살면서 농사나 사업을 크게 하면서 살면 안 된다는 말씀일까요? 큰 기업을 영위하는 회장은 예수 믿으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까? 11~12절을 합독하겠습니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

 

오직 나 자신이 즐겁고 흥겹게 사는데 매몰되어 있고,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행해야 할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게 문제였습니다. 내가 열심히 정직하게 모아서 즐기며 산다는데 누가 시비야... 이러면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아 그건 그런 사람들 얘기구요. 저는 아무리 잘~ 살게 되어도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살 자신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대한 말씀을 하신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아주 당당하게 저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6:19, 25입니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19).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25).

 

이 눅16:19와 오늘 본문 11~12절 말씀은 같은 의미의 말씀이 됩니다. 부자는 단지 좋은 것을 누리며 살았기 때문에 음부에 들어간 게 아니라, 하나님과는 관계없는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16:29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나는 안 그럴 수 있다고 큰 소리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교만은 우리가 가지고 누리는 것에 비례하여 커지게 됩니다. 내 의지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통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교만해지면 하나님을 멀리하고 떠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편안함과 안락함과 즐거움만 추구하며 산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둘 수가 없고, 하나님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볼 수도 없게(생각도 않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과 눈(생각)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세상의 교만한 자들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고 낮추시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을 멀리한다면 어떻게 하실 것 같습니까? 당연히 낮추시고 우리의 예상보다 더 낮추실 것입니다.

 

무지(lack of knowledge)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는 하나님에 대해 무지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눅16:29의 말씀처럼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그 마음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원하지 않으시는지를 알아야만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13~15절입니다. “그러므로 내 백성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힐 것이요 그들의 귀한 자는 굶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라 그러므로 스올이 욕심을 크게 내어 한량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즐거워하는 자가 거기에 빠질 것이라 여느 사람은 구푸리고 존귀한 자는 낮아지고 오만한 자의 눈도 낮아질 것이로되

 

우리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무지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은 높임을 받으십니다. 할렐루야!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46:10).

 

이스라엘 자손은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공의와 정의를 저버렸습니다.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16절을 합독하겠습니다.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정의로우시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으시리니할렐루야!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나 모습과는 상관없이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정의로우시므로 높임을 받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으십니다.

 

이제 끝으로 17절을 합독하겠습니다. “그 때에는 어린 양들이 자기 초장에 있는 것 같이 풀을 먹을 것이요 유리하는 자들이 부자의 버려진 밭에서 먹으리라여호와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시행되는 그 날은 하나님께서 오래 참아주셨던 심판의 날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정의와 공의를 따라 살지 못하면, 그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는 우리는 치는 심판의 막대기가 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그토록 경고하셨건만 무시하던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는 이방인에 의해 멸망 당하는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공의시고, 하나님의 공의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제가 맨날 강조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면, 이 하나님의 공의가 우리를 살리지만, 거부하면 우리를 심판하는 기준이 됩니다.

 

BC 586년 남 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은 그 땅에 노약자인 농부들을 주로 남겨두었습니다. 하나님께서 17절을 통해 이미 작정해두신 일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피 흘리며 자기 땅에서 쫓겨났던 자들이 어린 양들이 자기 초장에서 풀을 먹는 것처럼 먹게 될 것이고, 유리 방황하던 자들이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큰 밭을 만들었지만 그 밭을 쓰지 못하게 된) 부자의 버려진 밭에서 먹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씀대로 살며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따르길 원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자기들의 부귀와 안락함과 쾌락만을 추구하며 살았습니다. 그들의 근원적 문제는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그의 손으로 하신 일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데 있었습니다.

 

많은 것을 모으고 즐겁게 살겠다는데 인생의 목적을 두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살려 하면 하나님과는 멀어지게 될 것입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말씀을 늘 기억하며 사시길 축복합니다. 거지처럼 살라는 게 아닙니다. 인생의 목적을 잘 설정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빠진 인생은 제아무리 화려해 보여도 실패한 인생입니다. 음부로 들어갈 인생입니다.

 

우리의 눈과 마음과 생각과 뜻을 하나님께 두고, 말씀대로 승리하며 사시는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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