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은 밥은 다시 데워서 먹을 수 있지만, 쉰 밥은 다시 데워도 먹을 수 없습니다.”
지금은 천국에 계신 한국 교계의 원로셨던 고 양춘식목사님이 하신 말씀이라고 합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쉰 밥과 같은 사람들 때문에 밤 잠을 설치면서 기도하며 힘들어하고 있을 것입니다. 성도라야 몇 명 되지도 않고, 한 생명 한 가정을 힘들게 진액을 쏟으며 전도해서 훈련시키고 있는 상황인데, 쉰 밥이 한 번 날뛰면 데미지(damage)가 무척 큽니다. 이 쉰 밥과 같은 존재들은 의인을 위해 남겨두신 악인들입니다. 속에는 시체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데, 겉만 회칠한 무덤과 같이 번지르르한 주님께서 말씀하신 서기관과 바리새인같은 사람들입니다(마23:27).
예수님의 제자들인 베드로와 가룟유다를 각각 식은 밥과 쉰 밥에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앞에서 따라다니던 베드로는 급기야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리에까지 이르렀고, 냉동실에 넣어둔 찬 밥처럼 싸늘하게 식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주님 명령에 순종하여 기도에 힘쓰다가 오순절 성령으로 인해 다시 먹을 수 있는 뜨끈뜨끈한 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룟유다는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에도 전혀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간자체가 구제불능인 인간으로 태어났던 것입니다. 이런 자가 예수님의 제자였다는 사실이 오히려 우리에게 교훈과 위로를 줍니다. 오래 교회에 출석하고 봉사한다고 해도 결국 구원받는 자리에 이르지 못할 자, 포도원을 허는 여우와 같은 자(아2:15), 성도와 이웃을 실족케 하는 자(마18:7, 막9:42, 눅17:1), 남의 눈 속 티끌은 잘 찾는데 자신의 눈 속 들보는 보지 못하는 용서가 없고 싸움 닭과 같이 포악한 자 등이 쉰 밥의 예입니다.
목회자는 예민한 영성으로 식은 밥과 쉰 밥을 잘 구별해 낼 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힘으론 불가능할 수 있기에 성령님의 도우심도 구해야 합니다. 쉰 밥을 향해 ‘너 쉰 밥이니 끝이야’ 라고 할 수는 없기에 끝까지 조심하고 조심하면서, 진정 그 불쌍한 자들을 변화시켜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다만 쉰 밥에 너무 많은 목회적 자원을 투입하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 허탕으로 허무하게 끝날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버지 기도낭비, 시간낭비, 물질낭비 없는 목회여정을 가게 해 주세요.”
차라리 많은 자원을 식은 밥에 투입해야 합니다. 우리 주위에 식은 밥이 아주 많습니다. 그들을 놓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그들을 성령의 불로 뜨겁게 만들어 하나님께서 쓰시도록 올려드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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