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1장
삼하11장을 천천히 읽으세요.
요약: 다윗의 실패를 낱낱이 기록한 장이다. 전쟁터에 나가지 않고 왕궁에서 빈둥거리던 다윗이 목욕하던 여인 밧세바에 눈이 멀게 되었다. 그녀는 우리아의 아내였으나 다윗은 그녀를 데려와 동침했고 임신을 하게 되었다. 이 일을 무마하려고 우리아를 전장에서 불러들였으나 실패했다. 결국 다윗은 우리아를 죽이라는 편지를 당사자 편에 들려서 요압에게 보냈고 우리아는 전사했다. 우리아의 장례를 마치자마자 다윗은 밧세바를 데려와 아내로 삼았다.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다 (1~4절)
①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1절). ▶ 암몬 왕 나하스를 조문하려고 간 다윗 왕의 신하들을 모욕한 사건이 있었던 해가 지나고 이듬해 봄이 되었다. 작년엔 오히려 용병으로 고용된 아람 사람들이 다윗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번엔 지난 해에 말썽을 일으켰던 원인제공자 암몬을 치게 되었다.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라고 한 것으로 봐서는 당시에 각 나라의 왕들이 전쟁에 직접 참전하는 전통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다윗 왕은 작년에 직접 참전하여 대승을 거두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이번엔 출전하지 않고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었다. 승자의 여유였는지 게으름의 발로였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다윗은 자신이 지켜야 할 자리를 지키지 않았다. 여기서 다윗 인생의 최대 패착이 시작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다윗은 소위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혼자 들판에서 성실하게 양을 지켰고, 사울의 신하로서 충실히 자기 직분을 감당하던 사람이 아니었던가! 그런 다윗이었지만 이제 그의 왕위는 견고해졌고, 여호와께서 가는 곳마다 이기게 하셨음에도 오히려 그는 나태해지고 느슨해졌다. 골리앗과 맞서던 다윗은 보이지 않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포기한 또 다른 다윗을 보게 된다.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②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2절). ▶ 요압과 이스라엘 군대는 전장에 나가 있었지만, 다윗은 업무는 뒷전이고 하루 종일 빈둥거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라고 한데서 게으르고 나태해진 임금 다윗을 만나게 된다. ▶▶ 밧세바의 집이 왕궁 옆집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윗이 왕궁 옥상에서 저만치 보이는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았다. 멀리 떨어져 바라보는 다윗이 밧세바가 아름다운지 아닌지 어찌 알 수 있었을까 그녀의 몸매가 아름다웠다는 말일까? 어쨌든 다윗의 눈에 목욕하는 밧세바는 심히 아름다워 보였다! 여기서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하와다. 그녀는 ‘보암직한’ 나무에 끌려 그 열매를 따 먹었다(창3:6). 다윗도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 밧세바에 끌려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육신의 생각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했던 하와처럼, 육체의 욕망을 다스리지 못한 다윗의 눈에 나신의 밧세바는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 ‘보암직한’ 먹잇감일 뿐이었다.
③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3절)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4절) ▶ 빈둥대다가 일어나 목욕하는 여자를 본 순간 색욕이 발동한 다윗이 암암리에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이 누군지 알아보게 했다. 3절은 분명히 그녀가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임을 밝히고 있다. 다윗은 개인적으로 우리아가 누군지 몰랐더라도 지금 전쟁터에 나가 있는 군인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아는 헷 사람(족속)이었으므로 어찌보면 눈에 띄는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다윗은 전령을 보내 밧세바를 데려오게 했다. 전령을 보냈다는 말은 사적인 욕심을 위해 공적인 방법을 사용했다는 말이 된다. 즉 왕의 명령으로 밧세바를 부른 것이다. 전쟁터에 나가 싸우고 있는 군인의 아내를 자기의 사적인 욕망을 위해 건드리는 야비한 왕이 다윗이었다. ▶▶ 부정함을 깨끗하게 했다는 것은 생리가 끝났다는 말이다. 다윗은 그런 밧세바를 불러다가 다짜고짜(?) 더불어 동침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대로 다윗은 많은 아내와 첩들을 둔 왕이다(5:13). 그럼에도 그는 만족하지 못했다. 제아무리 왕이라 해도 왕을 위해 전장에 나가 싸우고 있는 부하의 아내를 빼앗는 것은 동서고금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다윗의 이런 행동을 점잖은 말로는 여성편력이라고 하겠지만, 인면수심의 강간범이라고 하는 게 더 적당하지 않을까? ▶▶▶ ㉠~㉥은 다윗이 잘못한 행동을 하나씩 짚어본 것이다.
다윗이 우리아를 죽이다 (5~27절)
① 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5절) ▶ 밧세바가 임신하게 되었다. 성경은 전쟁이 얼마나 지속되고 있는지 알려주지 않지만, 본 절을 통해 꽤 긴 시간 동안 계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다윗이 사람을 밧세바에게 보냈던 것처럼 그녀도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서 자신의 임신 소식을 공개적으로 전했다. 이는 자신이 살기 위한 최소한의 방책이었다. 남편이 전쟁터에 최소한 몇 개월-이 사건 전후로 따지면 그렇게 된다-은 나가 있는데 아내가 임신을 했다면 돌에 맞아 죽을 일이 아니던가!
② 다윗이 요압에게 기별하여 헷 사람 우리아를 내게 보내라 하매 요압이 우리아를 다윗에게로 보내니(6절) 우리아가 다윗에게 이르매 다윗이 요압의 안부와 군사의 안부와 싸움이 어떠했는지를 묻고(7절) 그가 또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 하니 우리아가 왕궁에서 나가매 왕의 음식물이 뒤따라 가니라(8절) 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의 주의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잔지라(9절)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아뢰되 우리아가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나이다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가 길 갔다가 돌아온 것이 아니냐 어찌하여 네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느냐 하니(10절) 우리아가 다윗에게 아뢰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 하니라(11절)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오늘도 여기 있으라 내일은 내가 너를 보내리라 우리아가 그 날에 예루살렘에 머무니라(12절) ▶ 범죄한 다윗이 이제는 야비한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그는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 우리아를 불러들였다. 이는 전쟁의 소식을 듣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를 집으로 보내 밧세바와 동침을 하게 하려는 계략이었다. 다윗은 음식물까지 하사하면서 우리아를 집으로 보내려 했다. 그러나 다윗이 의도한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았다. 앞서 본 대로 우리아의 집은 왕궁에서 보일 정도로 가까이 있었음에도 그는 집으로 가지 않고 왕궁 문에서 왕의 부하들과 함께 머물렀다. 요즘 말로 하면 참 올곧은 군인이었다. 다윗은 밧세바와 더불어 동침했으나, 우리아는 자기 주의 부하들과 더불어 노숙했다. 우리아가 집에 내려가지 않은 것이 어떤 사람을 통해 다윗에게 전해졌다는 것은 다윗의 범행이 알려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우리아는 ‘언약궤’가 야영 중에 있다는 말을 했는데, 이를 통해 그가 하나님을 의식하고 있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목하 우리아는 하나님의 사람이었고, 밧세바에 눈이 팔린 다윗은 육신적인 사람이었다. 언약궤를 향한 다윗의 마음(7:2)이 관념적이라면, 우리아의 마음은 구체적이요 실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아는 군사령관 요압과 왕의 군사들이 들에서 진을 치고 있는데 자기만 집으로 가서 아내와 함께 편히 잘 수 없음을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했다. 다윗의 가슴이 철렁할 소리였다. 우리아는 당당했고, 다윗은 움츠려들 수 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다윗이 육신적인 즉 땅에 속한 사람이 됐기 때문이다. 우리아는 싸움터에서 왕의 부름을 받고 돌아온 피곤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언약궤가 야영 중에 있음을 보고 집에 돌아가 발 씻고 아내와 자기를 포기한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됐기 때문이다.
③ 이튿날(12절) 다윗이 그를 불러서 그로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니 저녁 때에 그가 나가서 그의 주의 부하들과 더불어 침상에 눕고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니라(13절) 아침이 되매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내니(14절)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15절) ▶ 집으로 가서 아내와 자라는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우리아를 이번엔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해서 집으로 보내려 했다. 천하의 다윗이라도 절박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그는 3일 밤을 야영했다! 범죄한 인간은 필연적으로 추악해지기 마련이다. 다윗이라도 예외가 아니다. 하나님과 전쟁터에 있는 군사들을 생각해서 집에 가지 않은 우리아가 아니던가! 다윗은 자신의 계략이 실패하자 우리아를 죽이라는 편지를 그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냈다. 밧세바를 범한 일보다 더더욱 심각한 일이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새끼 양을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라고 하실 정도로 미물에게조차 사랑이 많으시고 배려가 깊은 분이시다. 이런 하나님 앞에 자신을 죽이라는 명령을 담은 편지를 배달시킨다는 것은 용납되기 어렵다. “그로 맞아 죽게 하라” 다윗은 강간죄에 더하여 살인죄를 저지르게 되었다. ▶▶ ㉦~㉧과 아래 ㉨은 다윗이 잘못한 행동을 하나씩 짚어본 것이다.
④ 요압이 그 성을 살펴 용사들이 있는 것을 아는 그 곳에 우리아를 두니(16절) 그 성 사람들이 나와서 요압과 더불어 싸울 때에 다윗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엎드러지고 헷 사람 우리아도 죽으니라(17절) 요압이 사람을 보내 그 전쟁의 모든 일을 다윗에게 보고할새(18절) 그 전령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전쟁의 모든 일을 네가 왕께 보고하기를 마친 후에(19절) 혹시 왕이 노하여 네게 말씀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에 그처럼 가까이 가서 싸웠느냐 그들이 성 위에서 쏠 줄을 알지 못하였느냐(20절) 여룹베셋의 아들 아비멜렉을 쳐죽인 자가 누구냐 여인 하나가 성에서 맷돌 위짝을 그 위에 던지매 그가 데벳스에서 죽지 아니하였느냐 어찌하여 성에 가까이 갔더냐 하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하라(21절) 전령이 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요압이 그를 보낸 모든 일을 다윗에게 아뢰어(22절) 이르되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우세하여 우리를 향하여 들로 나오므로 우리가 그들을 쳐서 성문 어귀까지 미쳤더니(23절) 활 쏘는 자들이 성 위에서 왕의 부하들을 향하여 쏘매 왕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죽고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하니(24절) 다윗이 전령에게 이르되 너는 요압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이 일로 걱정하지 말라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삼키느니라 그 성을 향하여 더욱 힘써 싸워 함락시키라 하여 너는 그를 담대하게 하라 하니라(25절) ▶ 요압은 다윗이 편지에서 지시한 대로 자신이 공격할 성을 살피고[observed the city(KJV)/kept watch on the city(NASB)/had the city under siege(NIV) 포위하고], 이스라엘 용사들이 있는 것을 암몬 자손들이 알아낼 만한 곳에 우리아를 배치했다. 요압이 진짜 군인이었다면 다윗의 명령을 거절했을 것이다. 제아무리 왕의 명령이라 해도 자신의 휘하에 있는 부하를 그렇게 죽일 수 없는 게 아닌가! 군인 정신으로 말한다면 요압보다 우리아가 군사령관 감이었다. 바보 임금과 머저리 군사령관의 합작으로 훌륭한 군인 우리아를 죽였다. 게다가 다른 군사들도 죽임을 당했다. 성경은 이들을 “다윗의 부하”라고 함으로써 다윗에게 책임이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결국 이들의 죽음은 전쟁터에서 적과 싸우다 영예롭게 전사한 게 아니라, 다윗에 의해 억울한 죽임을 당한 것이다. 다윗은 다중살인죄(多衆殺人罪)를 저질렀다. ▶▶ 왕이 명령한 대로 우리아는 죽었음에도 요압이 19~21a절에서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죽지 않아도 되는 군사가 죽은 데 대한 요압의 최소한 양심의 가책이었거나 아니면 그 책임이 자신에게 없음을 확인시키려는 것일 수 있다. ▶▶▶ 다윗이 요압에게 이 일로 걱정하지 말라고 한 것은, 성을 함락시키지 못한 일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는 게 아님은 분명하다. 우리아를 억지로 죽인 것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다. 요압까지 다윗 자신의 파렴치한 행각을 덮는 공범으로 만들고 있다.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삼킨다는 다윗의 말은 자신의 잘못을 무책임하게 다른 데로 전가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을 요압을 달래려는 말이다.
⑤ 우리아의 아내는 그 남편 우리아가 죽었음을 듣고 그의 남편을 위하여 소리내어 우니라(26절) 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27절) ▶ 우리아와 밧세바의 부부 관계는 비극적으로 끝나고 말았다. 우리아는 밧세바의 얼굴조차 한 번 보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 힘들고 어려울 때는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이 없었던 다윗이었는데, 목하 모든 것을 다 누리고 있는 그가 우리에게 낯선 사람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성경은 분명하게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라고 기록하고 있다. 사람은 너무 잘 나갈 때 교만해지고, 평온할 때 나태해진다. 특히나 자신에게 약한 부분 때문에 넘어진다. 인간적으로만 본다면 사울은 여자 문제는 없었던 왕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많은 아내(여자)로도 만족하지 못하고 우리아를 죽인 후 밧세바를 아내로 만든 사람이었다. 그의 약점이 그를 실족시켰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다(evil in the sight of the LORD)는 “displeased the LORD”(KJV/NIV)로 번역됐는데, ‘여호와를 불쾌하게 하다, 화나게 하다’라는 뜻이다. 다만 (히)원어인 ‘라아’에는 화나게 하다 라는 의미는 들어있지 않다.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인 이 일이 여호와를 불쾌하게 하고, 화나게 했다. 무서운 일이다! 피눈물은 다윗의 몫...
[문제11-1] 다음 중 삼하11장의 내용과 다른 것은?
① 이번 전쟁은 다윗이 출전하지 않아도 되는 전쟁이었다.
② 이스라엘 군대는 암몬 자손을 멸했지만, 랍바 성은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 었다.
③ 다윗은 목욕하던 여인이 누군지 조용히 알아봤으나, 데려올 때는 전령을 보냈다.
④ 다윗이 우리아를 개인적으로 몰랐더라도 현재 전장에 나간 사실은 알았겠 지만 밧세바를 불러 동침했다.
⑤ 밧세바는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왕에게 사람을 보내서 알렸다.
[문제11-2] 다음 중 삼하11장의 내용 중 틀린 것은?
① 다윗은 우리아를 집에 보내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불러들였고 음식물까지 하사했다.
② 우리아는 집으로 가지 않고 왕궁 문에서 왕의 부하들과 더불어 잤다.
③ 우리아는 예루살렘에 이틀 밤을 머물렀다.
④ 우리아를 맞아 죽게 하라는 왕의 명령을 담은 편지는 그 당사자인 우리아 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내졌다.
⑤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했다.
[문제11-1] ①
[문제11-2]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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