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5장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탕자의 비유’ 가 나옵니다.
이 탕자의 비유는 바로 앞 장에 나오는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눅14:23) 고 하신 말씀과는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14장의 말씀은 불신자들을 향한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15장의 탕자의 비유는 아버지의 품을 떠난 자식처럼 하나님의 집을 떠난 영혼들을 향한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양 한 마리의 비유나, 한 드라크마의 비유도 동일합니다.
99명의 성도가 교회에 남아있다 해도, 교회를 떠난 1명 때문에 주님이나 목사나 가슴 아파합니다. 주님께서는 잃어버린 양과 은화(드라크마)를 찾았을 때의 기쁨이 큼을 말씀하십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이 기쁨은 절정에 이릅니다.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눅15:32).
잔치를 배설한 아버지를 향해 맏아들은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건강하게 돌아온 아들을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은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그에게 동생은 아버지의 재산을 허비해 버린 탕자일 뿐이었습니다.
맏아들이 모른 또 한 가지는 이것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상속자인 사실을 몰랐거나 망각했습니다. 살진 송아지를 자신을 위해 잡지 않고,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지 않은 아버지를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이미 아버지의 유업을 분배 받았음에도(12절), 염소 새끼 한 마리 주지 않았다고 하며 아버지에게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맏아들은 아버지께 이미 상속받은 재산 외에 아버지가 소유한 나머지도 전부 자신의 소유임을 알지 못했습니다(31절).
우리도 매일 아버지의 집을 지키며 일 만 하고 있다고 원망하고 있지 않는지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탕자의 비유를 통해, 탕자가 아닌 맏아들은 오히려 아버지로부터 자신이 누군지 그리고 상속자로서 많은 것을 소유한 자라는 사실을 확증받게 됩니다.
탕자의 비유를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점은, 아버지의 사랑으로 작은 아들도 살게 됐지만, 큰 아들도 받은 복이 엄청나다 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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