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17:5~11
저주 받을 자 vs. 복 받을 자
5.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6.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7.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9.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10.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11.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살면서 가장 힘든 일을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악한 사람을 만나서 고생하는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사람의 일생을 가지고 얘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이를 먹고 세상을 보니 참으로 이상한 아이들이 많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아이들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부모를 보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문제적 아이들(청소년, 청년) 뒤에는 반드시 문제적 부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딱 그 부모의 수준만큼 아이들은 나타냅니다. 진짜 이상한 아이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그 부모를 보니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를 보면 그 자식을 알 수 있고, 어떤 사람을 보면 그 부모가 어떤 사람일지 추정이 가능합니다.
학창 시절에 좋은 스승을 만나지 못한 학생은 일평생 잘못된 길로 가게 될 수 있습니다. 잘못된 스승을 만난 사람은 참 특이하게도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잘못된 스승을 만나면 잘못된 인생길을 가게 되는 지름길이라 여겨집니다.
못된 남편이나 아내를 만나는 경우엔 좀 더 심각해서 하루하루가 지옥살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서 사는 일도 하나님께 구하여 받아야 할 매우 중요한 복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 신앙 여정에서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목회자와 교회와 성도들을 만나는 것도 아주 중요할 것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 시대도 오늘날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에게 반역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들을 따랐느니라”(렘2:8)
소위 하나님의 선지자(목회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바알 선지자(목회자)들과 교류하고, 바알의 제사에 참여한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어느 목회자의 추모사로 실린 신문 기사를 일부 읽어드리겠습니다. “O목사님은 후반기에 들어와서는 한국 교회의 통합을 위하여 노력하시면서 진보 진영, 천주교, 불교 지도자들과도 복음 안에서의 관용과 열린 대화를 하였습니다. 이러한 목사님의 태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근거한 그의 복음의 보편성을 깊이 파악한 이웃사랑과 선교의 동기에 기인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돈과 명예를 밝히는 목회자보다 더 나쁜 것이 다른 종교들에도 나름의 구원이 있다고 인정하는 <종교다원주의>를 추종하고 퍼뜨리는 목회자라 생각됩니다. 그런 목회자의 말을 듣지도 마시고 멀리 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오늘 본문 말씀으로 가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의 말씀을 함께 듣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함께 9~10절 말씀을 다시 한번 합독하도록 하겠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사람이 악한 것은 그 마음이 거짓되고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하여 알 수 있게 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알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마치 외과 의사가 사람의 가슴을 열고 심장과 폐를 들여다보듯이,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시고 계셔서 그의 행위와 행실대로 보응하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시지 않으십니다. 속 사람을 보십니다. 겉은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지만, 속은 각종 썩은 것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 겉만 본 사람은 박수를 치겠지만 우리 하나님은 그런 자에게서 얼굴을 돌리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도 마23:25~28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이어진 마23:33에서 주님께서 무시무시한 징계의 선포를 하셨습니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10절의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라고 하신 것과 일맥상통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주”의 사전적 의미는 ‘남에게 재앙이나 불행이 일어나도록 빌고 바람 또는 그렇게 하여서 일어난 재앙이나 불행’이라고 정의됩니다. 이의 반대말은 “축복”입니다. 이의 사전적 의미는 “하나님이 복을 내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 이 복과 저주 두 가지를 두셨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신11:26). 복이냐 저주냐 무엇을 받느냐 하는 것은 우리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오늘 본문 5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저주받을 자가 누구인지 친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는 사람을 믿으며, 육신(flesh)으로 자기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자입니다. 이 말씀의 청자(聽者)는 남(南) 유다 백성들이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오늘 우리 믿는 자들에 해당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에 대한 말씀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아니 사랑했던 사람에게서 마음이 떠났다면 당연히 몸도 떠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에게서 마음이 떠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당연히 그는 자기든 누구든 사람을 믿게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또한 필연적으로 육신을 자기 힘으로 삼고 따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람을 믿고 육신을 힘으로 삼는다는 말은 결국 세상을 믿고 따른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이는 결국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길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8:7),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약4:4)
예레미야 선지자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던 때의 시대 상황을 설명하는 말씀 한 구절이 있습니다. 렘5:1입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 거리에서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저주 받은 자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으리라 말씀하십니다. 그런 자가 사는 곳은 광야 간조한 곳(stony wastes in the wilderness 돌짝 밭 같은 광야의 버려진 땅),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a land of salt without inhabitant 거주자가 없는 소금 땅)입니다.
이스라엘이 고생하며 돌던 시내 반도를 가서 절대 걸을 수는 없고, 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먼지만 날리는 척박한 땅에 아주 드문드문 나무가 한 그루씩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기에 왜 말라죽은 것 같은 나무가 덩그러니 서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나무가 바로 오늘 말씀하고 있는 사막의 떨기나무입니다. 그 나무는 처량함만 느끼게 할 뿐, 보는 사람에게 아무런 감동도 기쁨도 유익도 주지 못합니다.
이 사막의 떨기나무와 같은 자, 사람을 의지하고 육신을 자기 힘으로 삼는 자, 그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자로서 저주 받은 자는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좋은 일”은 “prosperity”(번영, 잘~ 되는 것)를 뜻합니다. 좋은 일을 못 보고 광야 척박한 땅에 살지도 죽지도 못하고 서 있는 떨기나무와 같은 존재입니다.
이에 반대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복을 받는(받은) 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사람”입니다. 할렐루야!
KJV 성경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Blessed is the man that trusteth in the LORD, and whose hope the LORD is.”(여호와를 의지하는 자, 또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는 복이 있다)
그 마음이 여호와를 떠난 자와 달리, 여호와를 의지하고 소망하는 자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은 사람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이 홍해를 건너고 마라를 지나 도착한 곳이 있습니다. 출15:27입니다.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종려나무는 대추야자 나무입니다. 대추야자는 가나안에서 일명 꿀로 불리는 과일입니다. 피곤한 사람이 단 것(sweets)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납니다. 엘림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이 다 먹을 만큼의 대추야자가 있었던 까닭은 물(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겔47:12에도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더위가 오고 가뭄이 와서 물이 없어도 결실이 그치지 않는다는 말은, 오늘 본문 말씀처럼 좋은 일 즉 번영(prosperity)을 누린다는 의미입니다. 왜 그럴 수 있느냐?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유다(이스라엘) 사회에는 불법과 거짓이 가득했습니다. 렘6:13입니다.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본문 11절을 합독하겠습니다.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한글 성경은 불의라고 했지만, 원래 의미는 불의보다 약한 개념입니다. 그것은 “unjust”(부당한), “unjustly”(부당하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의가 아니라, 부당하게 부를 모아도 잘못이라고 하십니다. 불의는 그야말로 탈세나 사기와 같은 방법으로 축재하는 것이라면, 부당은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자기의 이익을 취하는 것이나, 장사하는 사람이 특정 품목에 파동이 날 것을 예상하고 미리 매점매석을 해두고 비정상적으로 비싸게 파는 일과 같은 것입니다.
자고새(a partridgea partridge)라는 새는 뻐꾸기와는 반대로, 자신이 낳지 않은 알을 품는 새로 알려져 있습니다. 뻐꾸기는 남(종류가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 부화시키고 키우는 새입니다. 그래서 자고새는 바보새, 뻐꾸기는 얌체새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자고새가 남의 알을 품고 부화시켜서 키우지만, 결국엔 그를 저버리고 떠납니다. 마찬가지로 불의하게 부를 쌓은 사람은 중년에(in the midst of his days 그의 생애 중에) 그것이 떠나겠고(it will forsake him 그 물질이 그를 저버릴 것이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이 한 글자도 틀린 게 없습니다. 마침내 그는 거지가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자(a fool)가 되리라고 하십니다. 불의로(부당하게) 물질을 쌓는다 해도, 자고새가 품고 키운 새가 홀연히 떠나듯이, 부당하게 재물을 축적한 자의 물질도 홀연히 사라지고 그는 어리석은 자고새처럼 되고 만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고 마치겠습니다.
우리의 행위와 행실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우리)의 앞에 복과 저주를 두셨습니다. 선택은 각자의 몫입니다.
자기 자신이나 사람을 의지하고 힘으로 삼으며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저주받은 자가 되지 맙시다. 그는 광야의 떨기나무 신세로 살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의 소망으로 삼는 복 받는 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그는 물가에 심겨져 풍성한 열매를 맺는 나무처럼 살게 될 것입니다. 그에겐 좋은 일, 번영하고 번성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부당하고 불의하게 재물을 쌓는 자는, 인생이 끝나기 전에 자고새처럼 어리석은 자가 된다고 하신 말씀을 꼭 기억하면서, 정당하고 떳떳하고 깨끗하게 재물을 대하는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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