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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고

사랑이 곧 믿음

7:36~50

사랑이 곧 믿음

 

 

36.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40.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43.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44.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45.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49.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50.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우리가 살면서 가장 쉽게 그리고 자주 하는 인사말이 있다면 언제 식사나 한 번 하시죠?” 일 것입니다. 두 번이 아닙니다. 한 번입니다. 식사와 끼니에 목숨을 건 민족은 우리 민족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세계 어디를 다녀봐도 우리처럼 거창하게 차려놓고 먹는 나라는 중국 정도 외엔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식사를 하면서 교제를 하고, 사업 얘기를 하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먹으면서 만남을 가지다 보면 긴장도 풀어지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런 자리는 의외로 형식적인 자리로 끝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친구 모임이라든지 다른 여러 모임에 나가서 느끼셨겠지만, 괜히 시간 낭비 돈 낭비했네 라고 생각한 때가 여러 번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세계적인 투자가 워렌 버핏 같은 사람과 한끼 식사를 하려면 수억 원을 내야 한다고 합니다. 그 댓가만큼 얻을 게 있기 때문이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어떤 바리새인이 등장합니다. 바리새인 그러면 일단 좋은 생각이 들지 않지요? 거부감이 들지요? 왜 그렇습니까? 사사건건 주님을 곤란하게 하고 올무를 놓아 잡으려는 행태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인지 시몬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바리새인은 식사 한번 하시자고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청했습니다. 시몬 외에 다른 사람들이 여럿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건대, 예의 그런 자리 즉 주님을 곤경에 빠뜨리려는 계획이 있지 않았을까 추정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쨌든 주님을 초대했다는 것은 칭찬받을만합니다.

 

그런저런 사정을 모르지 않으셨을 주님께서 그 시몬의 집에 가셔서 식사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주님께서 시몬의 집에 오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가지고 있던 향유 담긴 옥합을 가지고 주님께 왔습니다.

 

이 여인을 오늘 본문은 죄를 지은 여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다른 사복음서에 기록된 향유 사건과 별개의 일로 보는 견해가 크지만, 그 여자가 누구냐에 상관없이 한 가지 사건으로 보겠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 향유를 부은 중요한 사건이 두 가지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26:13, 14:9도 동일).

 

왜 특별히 죄를 지은 여자라고 호칭하고 있을까요? 아마도 바리새인들과의 극적인 대비를 이루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바리새인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나 오늘 이 시대의 바리새인들이나 공통점이 있다면, 자신들은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습니다.

 

이 죄를 지은 여자가 놀라운 행동을 합니다. 38절을 합독하겠습니다.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할렐루야!

 

같은 절을 이렇게 번역한 것도 있습니다. “그녀는 예슈아의 뒤에 서서 자기의 눈물이 예슈아의 발을 적실 때까지 울었습니다. 그리고 머리카락으로 그분의 발을 닦았고 그분의 발에 입맞추고 그 위에 향유를 부었습니다.”

 

누가복음 외의 다른 사복음서는 향유의 값어치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제자들이나 사람들이 왜 그리 비싼 향유를 허비하느냐고 여자를 힐난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여자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바리새인 시몬은 에수님을 조금이나마 선지자로 알고 초청한 것으로도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자기의 영광을 위해 주님을 초청했으리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그렇습니다. 그는 주님을 100% 선지자라고 확신하지는 않았다는 말이 됩니다.

 

그의 생각(속으로 한 말)을 계속 들어보겠습니다.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들려 온 여자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볼 수 있듯이(8),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죄는 잘 정죄하지만 정작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없다는 듯이 눈을 감습니다.

 

시몬의 생각은 이것입니다. 만일 예수가 선지자라면 동네의 죄를 지은 여자가 와서 이런 행동을 한다면 당장 내쫓아 버리는 게 맞을 텐데, 그러지 않는 것을 보니 선지자가 아니구나 라고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그런 바리새인 시몬에게 주님께서 내가 네게 해줄 말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하신 말씀이, 500데나리온과 50데나리온 빚진 두 사람이 있는데 둘 다 갚을 능력이 없어서 빚을 탕감해준 채주에 대한 말씀입니다. 한 채무자는 다른 채무자보다 10배의 빚을 더 지고 있었지만, 둘 다 탕감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시몬에게 물으셨습니다. 탕감받은 두 사람 중에서 누가 더 탕감해 준 채주를 사랑하겠느냐 하고 말입니다. 시몬은 더 많이 탕감받은 자가 그럴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판단이 옳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채무자가 더 사랑을 받았느냐고 물으신 게 아닙니다. 둘 중에 누가 채무를 탕감해 준 채주를 더 사랑하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죄를 지은 여자가 바리새인 시몬보다 죄가 더 많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보시기엔 그 반대일 수도 있겠습니다.

 

주님께서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주님의 말씀을 통해 시몬이 주님을 어떻게 맞이했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시몬은 손님이 왔을 때의 기본 예절 즉 종들을 시켜서 VIP 손님이신 주님의 발을 닦아 드리기는 고사하고, 손수 발 씻을 물조차 드리지 않은 결례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자신의 눈물로 물을 대신하고, 여자의 영예인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주님의 발을 닦아 드리며 주님에 대한 사랑을 드러냈습니다. 할렐루야! 또한 시몬은 인사도 없이 아주 형식적으로 주님을 맞이했지만, 여자는 장차 십자가에서 못 박히실 그 발에 계속 입맞추었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46절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우리 함께 합독하겠습니다.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할렐루야! 시몬은 올리브유조차 주지 않았지만, 여자는 귀하디 귀한 향유를 내 발에 부었다고 하셨습니다. 시몬이 주님을 조금이나마 선지자로 생각했다면, 주님께 올리브유라도 부어드려야 마땅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발에 향유를 부었다는 것은 여인의 겸손함을 표현합니다. 나 같은 죄인이 어찌 감히 주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을 수 있다는 말인가!

 

주님은 여자가 아니라 먼저 시몬에게 선포하셨습니다.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할렐루야! 시몬은 여자를 죄인이라고 치부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시몬에게 여자의 많은 죄가 사해졌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녀의 많은 죄가 사함 받을 수 있었던 까닭은 주님 말씀에 따르면 이것입니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할렐루야! 여인이 주님께 큰 사랑을 보여드렸기 때문에 많은 죄를 사함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오늘 주님 말씀에서 중요한 진리를 두 가지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 우리가 주님을 진정으로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주님께 많이 사함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시몬과 같은 사람이겠지요.

 

이제 주님께서는 여인에게 선포하셨습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그렇습니다. 우리 주님께는 죄를 사하시는 권한이 있습니다. 이것도 오늘 우리에게 다시 한번 알려주십니다.

 

둘째, 주님에 대한 사랑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마지막 절인 50절을 합독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 중에서 특이한 점을 하나 꼽으라면, 여자가 주님께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울며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아드리고 입맞추며 주님 발에 향유를 붓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주님을 사랑하는 그녀의 믿음을 보시고 죄를 사해주시며 구원해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주님 앞에 나와 말만 하지 마시고, 주님을 향한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드리기를 소망합니다. 여인의 행동을 하나씩 짧게 살펴보고 말씀을 정리하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뒤에 서기 바랍니다. 너도나도 다 주님 앞에 서려고 합니다. ‘주님 저를 따라오세요. 제가 주님을 인도하겠습니다.’ 이건 안 될 말입니다. 겸손하게 늘 주님 뒤에 서시길 축복합니다.

 

주님 앞에서 울기 바랍니다. 세상을 향해 울분을 터뜨리지 마시고, 나를 위해, 가정을 위해,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우시기 바랍니다. 회개하며 웁시다.

 

나의 죄를 용서해주심에 감사드리면서 주님의 발을 닦아드리며 입맞추기 바랍니다. 주님의 발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 오르시고 못 박히신 발입니다. 그래서 나의 추악하고 커다란 죄를 용서받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발을 닦아드리며 입맞춘다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를 귀히 여기고 감사하며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주님께 아낌없이 부어드리기 바랍니다. 주님 앞에 그리고 주님의 몸 되신 교회와 이웃에 너무나 인색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나는 잘 살게 되었지만 주님은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이러한 풍요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물질로 몸으로 시간으로 지금보다 더 주님께 헌신하고 나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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