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3:22~30
어디서 온 누구냐?
22.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23.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24.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5.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26.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28.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29.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30.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동시대 유대인들은 신약성경에 대해 무지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전 시대 사람들은 안 그랬다는 말도 물론 아닙니다. 그들이 ‘타나크’라고 부르는 구약성경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을까요? 안타깝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성인식을 위해 몇 장 읽어본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무지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1년에 최소 성경 일독을 하는데, 정작 구약 말씀을 직접 받은 유대인들은 평생 일독도 안 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가면 볼 수 있는 정통파 유대인들은 조금 다를 수는 있겠습니다.
그들은 자녀들에게 신약 성경을 절대 읽지 못하도록 소위 단도리를 단단히 합니다. 그래서 카톨릭에서 예수를 섬기는 줄 알고, 그를 로마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여차저차 해서 그들이 세 번 크게 놀란다고 합니다. 첫 번은 신약성경 마1:1을 보고 놀라서 충격을 받는다고 합니다. ‘예수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둘째 번은 미국 같은 나라에 사는 유대인들이 친구 따라 강남 가듯이 교회에 가서 보면, 설교하는 목회자나 듣는 성도들이 자기들보다 구약성경을 더 많이 알고 있어서 놀란다고 합니다. 셋째 번은 사53장을 읽고 놀란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사53장을 읽지 않기/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사53장이라 말하지 않고 들려주면, 신약성경을 왜 자기에게 읽어주냐고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고난 당하시고 죽으신 메시아이심을 무의식중에라도 알고 있다는 방증이 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전도하는 방법 중 최고는 이사야 53장을 읽어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주인공이신 예수님도, 제자들도, 기록자들도, 청자(聽者)들도, 지명(地名)도, 등장인물도 거의 다 유대인들입니다. 만일 지금의 유대인들이 신약성경의 의미와 그 주인공이 누구며, 기록자들이 누군지와 누구를 위해 기록되었는지를 안다면 지금보다는 더 구원 받는 자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오늘 함께 교독하신 본문 말씀도 당연히 유대인들을 향한 주님의 메시지입니다. 그렇다고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 말씀이 아니란 것도 당연히 아실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오해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을 적게 받고, 동서남북 각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많이 구원의 자리에 드는가 보다 생각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과 지금의 유대인들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길고 짧은 것은 끝까지 가봐야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유대인을 위해서도 오셨지만, 우리를 위해서도 오셨습니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복음은 어느 누구에게나 어느 민족에게나 활짝 열려있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 말씀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 도시와 마을로 다니시고 가르치시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고 계셨습니다. 주님의 3대 사역은 가르치심과 선포(전파)하심과 치료하심인데(마9:35), 이번 전도 여행은 ‘가르치심’에 주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주로 가르치시면서 여러 성과 여러 마을로 다니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26절에서도 그렇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렇습니다. 주님께 나온 자는 마치 무엇을 알고 있는 듯이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자가 많겠다고 하셨습니다. 24절을 합독하겠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이 24절 말씀에서 주님께서는 힘쓰라고 하셨지만, 그럼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고 하십니다.
이 24절에서는 2가지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합니다. 하나는 힘써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못 들어가는 자가 많으리라는 것입니다. 문 안쪽은 구원 받은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는 곳입니다. 거기로 들어가기 위해 힘쓰라고 하신 주님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구원은 우리의 노력이나 공로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닌데 말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해서 알려드립니다. 그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우리는 우리를 억누르던 죄에서 해방되고 구원을 받습니다. 할렐루야!
많은 성도들이 구원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갈팡질팡하면서 신앙 여정을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신경 쓰지 마시고, 오직 성경에서 주님께서 무어라고 말씀하시는지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주님께서는 힘써도 안 되는 일인데 왜 힘쓰라고 말씀하고 계실까요? 한마디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말씀입니다만, 문을 여닫는 주인이 계시고 아무에게나 열어 주시지 않기에 힘쓰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좁은 문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막10:23~27). 이 말씀의 의미는 한마디로, 구원 문제는 사람 소관이 아니라 하나님 소관이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구원관의 핵심은 구원을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는 자유를 누리며 살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와 사망에서 자유로운 인생이 된 건 맞지만,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그래서 방종도 자유로 착각하는 인생도 가능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되, 구원의 최종 확정권자는 우리 주님이심을 자각하고 사시길 바랍니다. 모 교회의 세습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해, 물려주는 목회자가 ‘그러다가 너희들 다 지옥간다’고 했다는데, 그건 월권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결정하실 일을 인간이 하면 안 됩니다.
사람들이 닫힌 문을 두드리며, 주여 하면서 열어 달라고 간청할 때에 안에서 주인이 대답합니다.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그래서 문을 열어 주지 못하겠다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진짜 모르셔서 이렇게 말씀하신 걸까요? 동서남북 아마도 멀리서 온 자들도 아시는데(29절), 가까이 있던 자들을 모르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때, 너는 누구고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면 곤란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오늘 주님 말씀처럼 힘써야 하겠습니다.
26절을 합독하겠습니다.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문 앞에 온 자들 중에는 주님이 베푸신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가르치시던 현장에 나왔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모르시겠냐고 했지만, 주님께서는 다시 한번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마7:21~23과 연관 지을 수 있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오늘 본문 말씀이 교회에서 먹고 마시며 말씀을 듣는 평신도와 관련된다면, 마7장의 말씀은 목회자와 관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둘 다 주님으로부터 너희를 알지 못한다는 말씀을 듣고 주님 앞에서 쫓겨났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불법이 무엇입니까? 법을 어기고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인 말씀을 지키지 않고 어기는 자는 불법을 행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들어가는 것을 거절당한 이유가 27b절에 있습니다.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그렇습니다. 행악과 불법을 행하면 주님께로부터 나는 너희를 모르니 내게서 떠나 가라는 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제 주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힘써야 하는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자력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능력으로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힘써야 할 게 있습니다. 주님이 주인으로서 지키고 계신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악에서 떠나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마6:13a),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요17:15).
복음과 구원은 아주 심플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구원자 되심을 믿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 받은 줄 믿습니까?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네가 어디서 온 누구인지 아노라 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악에서 떠나 살겠습니까? 아멘? 그럼 됐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 지도자들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본다면, 주님의 경고가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28절입니다.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먼저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깥으로 쫓겨날 때에, 동서남북 사방에서 나중에 택함 받은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잔치 자리에 앉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먼저 믿은 자들이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고, 나중 믿은 자들이 잔치 자리에 참여할 수도 있음을 경고하시는 것으로도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십니다.
좁은 문은 문자적으로, 힘들고 어렵고 고통이 수반되는 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미상으로는 많은 자들이 들어갈 수 없는 문입니다.
힘쓰라고 하셨다고 해서 우리의 노력으로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능력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악이 너무나 만연하여 악에 무뎌진 세상이 되었지만, 우리는 악에서 떠나 사는 데 힘써야 합니다.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나는 네가 어디서 온 누구인지 모른다 라는 말씀을 듣게 되면 안 됩니다. 악과 불법을 행한 자들에게 주님께서 그렇게 책망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 앞에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하게 되는 귀한 성도들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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