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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고

다시 한번, 야베스의 기도

대상4:9~10

다시 한번, 야베스의 기도

 

 

9.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10.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역대기는 아담에서부터 출발하는 족보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거기엔 수없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별한 점을 꼽자면 아브라함의 손자요 이삭의 쌍둥이 아들 중에서 동생인 야곱(이스라엘)의 열두 아들 중 넷째 아들인 유다의 계보를 집중적으로 기록하고 있다는 게 그렇습니다.

 

유다는 요셉처럼 특출난 인물이 아니었고, 내세울 만한 장점이 보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단지 그가 동생 요셉을 죽이려고 했던 다른 형제들에게 그를 죽이지 말고 팔자고 했던 정도의 측은지심이 있었던 게 유일하게 내세울 만한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사람의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다고 하십니다(55:8). 성경 속에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중 하나인 다윗 왕은 유다 자손이었고, 다윗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에 성경은 유다 지파의 계보와 다윗 왕가를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대상2:3~4입니다. “유다의 아들은 에르와 오난과 셀라니 이 세 사람은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이 유다에게 낳아 준 자요 유다의 맏아들 에르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죽이셨고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유다에게 베레스와 세라를 낳아 주었으니 유다의 아들이 모두 다섯이더라

 

그런데 오늘 본문 바로 앞의 4:1을 보겠습니다. “유다의 아들들은 베레스와 헤스론과 갈미와 훌과 소발이라앞 장에서도 유다의 아들들은 5명으로 기록되어 있고, 뒤에서도 5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레스외에는 다른 이름들입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역대상 2장에 나오는 다섯 아들들이 창세기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4장에 등장하는 베레스 이외의 이름들은 누구일까요? 유다의 아들들이라고 했어도 후손들 내지는 지파의 우두머리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헤스론이 베레스의 아들임은 확실합니다(26:21, 1:3). 어쨌든 간에 모두가 유다 지파의 후손들인 것은 분명합니다.

 

역대상 3장은 전체가 다윗 왕의 직계 자손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에 뒤이은 4장을 1절부터 8절까지 함께 합독하겠습니다. (합독)

 

이렇게 읽고 보면 오늘의 주인공인 야베스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본문 9~10절은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 갑툭튀같은 부분입니다. 야베스는 본문 바로 앞의 8절에 의하면 고스의 후손이거나 아하헬가문의 후손이 아닐까 생각되지만 알기 어렵고, 어머니의 이름도 알 수 없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에 대해 기록한 오늘 본문 말씀을 수많은 사람이 읽었고, 낭송했으며, 암송까지 하다못해, ‘야베스의 기도라는 노래까지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고 오늘 본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 왕의 아들들에게도 붙이지 않은 호칭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왜 귀중(존귀)한 자라고 불렸을까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야베스 자신이 존경받을 가문이나 집안이 아니고, 그가 훌륭해서도 아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오히려 야베스는 그의 어머니가 수고로이/ 어렵게/ 힘들게) 낳은 아들이었다고 오늘 본문 말씀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야베스 라는 이름에는 괴롭게 하다’ ‘슬프게 하다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수고로이 낳았지만, 귀중하게 여김을 받는 상반된 이미지의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자녀들이 그렇기는 합니다.

 

이 야베스를 하나님께서 높여주셨습니다. 자신을 스스로 높이는 것은 자만한 것이고, 사람들이 높여주는 것도 허무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하나님 앞에 진정 올바로 선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존귀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야베스가 형제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귀중한 자로 인정받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 10절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그는 하나님께 복을 구했습니다(전체적).

 

하나님께 복을 구하고, 복을 받아 누리며 사는 것은 매우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인생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과 저주를 우리 앞에 두셨는데, 그 선택은 우리 각자의 몫으로 남기셨습니다.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11:26~28).

 

야베스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 복을 구했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설령 그리했더라도 그가 구한 복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았고, 하나님께 복을 구했을 때, 응답하셨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야곱은 자기 인생에서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하나님께 무엇을 구했는지 아십니까? 복을 구했고, 받았습니다(32:26~29). 인생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날 때, 하나님께 구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저를/ 저희 가정을 축복해주옵소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로 가면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하나님께 복을 구하시고, 내 몫에 지워진 십자가도 절대 마다하지 마시길 축복합니다. 고난이 오더라도 절망 낙망하지 마시고, 오히려 하나님께 복도 구하여 받는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로, 지역(지경)을 넓혀 주시기를 구했습니다(이하 구체적).

 

지역(지경)이 넓혀진다는 것은 먼저 경제적인 면에서, 땅을 차지하는 복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땅을 차지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누차 약속하신 바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약속하신 땅을 차지하며 살리라 말씀하셨습니다.

 

37편에 누가 땅을 차지할 수 있는지 알려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첫째로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입니다.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9).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어느 때나 우리 하나님 여호와만을 소망하며 사시길 축복합니다.

 

둘째, 온유한 자입니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11). 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5:5). 셋째,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입니다. “주의 복을 받은 자들은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들은 끊어지리로다”(22).

 

넷째, 의인입니다.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서 영원히 살리로다”(29). 다섯째, 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는 자입니다. “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똑똑히 보리로다”(34). 여호와를 바란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Wait for the LORD입니다. 그렇습니다. 잠잠히 하나님을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기도라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을 해달라고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마음과 얼굴과 때를 기다리는 것이 기도라고 하겠습니다.

 

또한 지경이 넓혀진다는 의미는 단지 우리가 차지하는 땅이나 집이나 재산이 넓혀진다는데 국한되지만은 않습니다. 우리 삶의 영역이 넓어질 수도 있고, 우리의 사역의 범위가 넓어진다는 뜻도 있을 것입니다.

 

먼저 나 자신을 잘 사역하시기 바랍니다. 이게 가장 어렵습니다. 이것을 성화의 과정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변하지 않는 나의 모습이 있다면 성령님께 구하시길 빕니다. ‘성령의 불로 나를 태우사 변화시켜 주시옵소서이 다음부터는 쉬워집니다. 가정으로, 교회로, 직장으로, 학교로, 세계로 우리의 사역지가 확대되기를 기대합니다. 할렐루야!

 

셋째로, 여호와 하나님의 손으로 도와주시기를 구했습니다.

 

한글 성경은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라고 하여, 여호와께서 도우셔서 환난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라는 뜻으로 번역했지만,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소서, 나로 환난을 벗어나게 하옵소서 라고 각각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만, 그 도움은 짧고 유한합니다. 도움을 받게 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거절이 다반사입니다. 거절의 쓴맛을 본 사람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121:1~2입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할렐루야!

 

여호와 하나님의 손으로 도와주시라는 뜻은 무엇일까요? “Your hand might be with me” 여호와 하나님의 손이 나와 함께 해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한 줌 권력을 가진 자들 중 역겨운 자들은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을 능멸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신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지으신 사실을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능멸한 자들은 조만간 큰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놀라우신 하나님의 손이 우리와 함께 해주신다면 두려울 게 뭐가 있으며,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8:31). 할렐루야!

 

넷째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해주시기를 구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환난을 만나게 됩니다. 욥처럼 자신이 생각하지도 않은 고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런 종류의 고난이나 환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연단하시기 위해 허락하시는 경우이고, 그 결과로 큰 복을 주시기도 합니다.

 

반면에 나의 욕심과 무지로 인해 당하게 되는 환난도 있습니다. 이런 환난이 우리의 삶 속에 더 자주 생기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환난조차도 지나가도록 하나님께 당연히 구해야 하겠지만, 환난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1:15)고 하신 말씀에서 사망이 곧 환난이라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자초한 환난의 근원인 욕심을 버리게 되시길 바랍니다.

 

작은 환난이건 큰 환난이건 간에, 그로 인해 우리는 근심하게 됩니다. 꼭 환난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런 근심 저런 근심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어쩌면 근심거리의 연속일지 모릅니다. 몸이 아프거나,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여러 가지 문제들이 우리를 힘들게 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야베스가 우리에게 해답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작건 크건 간에 근심이라는 골칫덩이는 우리를 피곤하고 힘들게 합니다. 때론 우리의 오장육부를 병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근심을 초월하도록 기도해도 좋겠지만, 야베스는 아예 근심이 없도록(생기지 않도록) 기도했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고 마치겠습니다.

 

오늘 이 마지막 시대를 사는 우리는 여러 가지 어렵고 힘든 일을 거의 매일 마주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염려, 걱정, 근심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다시 한번 야베스의 기도를 통해 우리 모두가 도전을 받고,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도우신다는 것을 리마인드하게 되신 줄 믿습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마시고, 언제나 우리를 기꺼이 도와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만 의지하시며 구하시길 축복합니다.

 

야베스가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한 결과는 무엇입니까? 간단하지만 강력합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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