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5:17~20
점 하나, 획 하나도
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세상에서 가장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을 꼽으라면, 아마도 자기가 한 말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나중에 딴소리를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친구도 없을 것이고, 아무도 그 주변에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로 거짓말을 남발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런 정치인을 추종하는 국민이 많다는 것은 결국 거짓이 일상화된 사회라는 말도 됩니다.
우리는 신용카드를 씁니다. 카드는 카드인데 신용이란 단어가 붙은 것을 보면 신용으로 쓰는 카드, 신용을 지켜야 하는 카드 정도의 의미가 들어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결제일이 되면 미리 사용한 카드 사용 금액을 반드시 지켜서 납부(결제)해야 합니다. 급한 일이 생겼다든지, 부득이한 문제가 있다든지 하는 핑계는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결제일을 어기는 순간, 그 사람의 신용은 떨어지게 됩니다.
이처럼 인간 사회에도 지켜야 할 신용이 있고, 자신이 한 말이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한 규칙이기도 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사회의 낙오자가 되거나 조직에서 퇴출되고 말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 하나님께서는 어떠하시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그러하시다는 의미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들어있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이제 시대가 바뀌었으므로 역시 그 말씀도 바꿔서 다르게 봐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옳지 않습니다. 물론 구약시대의 동물 제사법과 같은 말씀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희생되셨으므로,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이는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율법의 완성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즉 미완성의 구약시대 제사를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써 완전케 하신/ 완성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동성애와 동성애자를 대하는 모습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보면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뭐라고 명령하십니까?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레20:13). 동성애는 전후좌우 불문하고 절대로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동성애를 반대하지만, 동성애자는 사랑하고 받아들여야 할 대상입니다.”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해야 한다는 그런 뜻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죄인을 언제 사랑할 수 있나요? 여전히 동성애에 빠져있는 사람을 사랑해야 할까요? 그렇게 해야 한다면 동성애를 금할 방법이 없어지게 됩니다. 죄는 미워하되 죄인을 사랑한다는 말은 그 죄에서 벗어난 사람의 지나간 죄를 묻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며칠 전 CGN 글로벌 뉴스를 통해 중국 정부가 자행하고 있는 성경 모독 행위를 듣게 되었습니다. 매일매일 끔찍한 뉴스의 연속입니다. 마지막 때가 거의 문 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중국의 성도 숫자는 자국 인구의 10% 정도인 1억 몇 천만 명인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은 복음과 성경을 공산당 독재의 최고 방해물로 인식하고, 그동안 교회를 파괴하는데 온 힘을 써왔습니다. 그랬지만 믿는 자들은 핍박당할수록 더욱더 열심을 내고 오히려 교회가 부흥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중국 정부가 생각해 낸 방법이 성경을 완전히 바꿔버리고, 예수님을 살인자와 죄인으로 낙인찍는 악행을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요한복음 8장의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를 이렇게 바꿨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들을 예수에게 데리고 왔다. 예수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했더니 하나씩 다 사라져버렸다. 예수와 여인만 남았을 때 예수가 돌을 들어 여인을 쳤다. 그리고 하는 말이 사실은 나도 죄인이다. 이렇게 바꿨다는 겁니다. 철저한 신성모독입니다. 이렇게 바꾼, 성경도 아닌 것을 이제는 오히려 공개적으로 배포하고 있다고 합니다. “너는 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잠30:6).
지난 프랑스 올림픽 개막식에서 보여주었던 프랑스 정부의 악행도 무서운데, 이 중국 공산당 정부의 성경 모독은 레드라인을 한참 넘은 것입니다. 심판주 그리스도 예수님의 무서운 징계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시2:9~10입니다.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요1:14a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라고 기록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이신 하나님이신데(요1:1), 그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현현(顯現)(Incarnation)은, 말씀의 나타나심이고 임하심입니다. 우리가 늘 가까이 대하고 있는 성경은 단순한 책이요 활자가 아닙니다. 그렇기에 성경을 소리 내어 읽기만 해도 능력이 나타나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로부터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공격을 많이 받으셨습니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안식일에 대해 올바르게 알려주셨고,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까지 선언하시게 된 것입니다(마12:8, 막2:28, 눅6:5).
오늘 주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은 모세를 통해 말씀하신 율법서,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선지서를 의미하므로, 모든 성경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찮은 인간이 뭐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없애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그것은 십일조에 대한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에도, 선지자를 통해서도, 심지어 주님께서도 친히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교회 밖에서가 아니라, 교회 내부 출신자들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버젓이 거짓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늘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20절을 합독하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렇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도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물론 주님께서 본질이 빠진 십일조를 드린 것에 대해 책망을 하셨지만, 어쨌든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23:23).
그러므로 서기관이나 바리새인조차 드린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자들이라면, 그런 자들의 의는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보다 못한 의를 가진 자들로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에 있어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를 뛰어넘으려면, 주님께서 알려주시는 마23;23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우리 주님은 율법을 성취하시고 완성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10:4). 이렇게 우리 주님이 우리를 살리시려고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완결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더 이상 변경되거나 훼손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부터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사시길 축복합니다.
주님께서는 18절에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라고 하심으로써 우리가 더욱 신경을 써서 듣기를 원하십니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이 주님의 말씀엔 이런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천지가 없어지지 않는 한 율법은 다 이뤄진다. 천지가 없어진다면 율법도 없어질 것이다. 천지는 사라질망정 율법은 남아서 다 이루어질 것이다.
이 ‘율법’을 ‘예수 그리스도’로 대치해 보겠습니다. 세상이 존재하는 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은 완성된다. 천지가 없어지지 않는 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다 이루어진다. 천지가 없어질지라도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일점 일획도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19절 말씀은 예수님 당시의 제자들이나 오늘날 계명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자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물론 부모가 자식을 말씀으로 잘 양육해야 하는 입장에 있으므로 부모자식 간의 관계도 포함되겠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이 시대의 문제는 두 가지입니다. 말씀이 행해지지/실천되지 않는 것과 말씀을 잘못 전하는 것입니다. 19절에서 이 계명 중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린다는 것은 범한다 내지는 행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계명을 위반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가 된다고 하십니다.
주님 말씀에 의하면 천국에서도 큰 자와 작은 자의 구별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갑을관계에서 맨날 을의 위치에 있어서 설움을 당한 사람이, 천국에 가면 그럴 일이 없겠다고 생각했다면 이는 착각입니다.
분명한 것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큰 계명을 어긴 게 아니라 지극히 작은 계명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지극히 작은 계명을 어긴 자라도 천국엔 들어가겠지만, 거기서는 지극히 작은 자로 영원히 남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지극히 작은 계명이라도 행하며 가르치는 자들은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는 존재가 되리라고 하십니다. 행함과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나는 행하지도 않으면서 남을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버리고”의 반대는 “행하며”입니다. 할렐루야!
지극히 작은 계명을 버리고 그렇게 가르치면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가 됩니다. 우리 모두 지극히 작은 자들이 되지 않도록 합시다. 우리가 행하고 그렇게 가르치더라도 지극히 큰 자는 될 수 없습니다. 왜죠? 우리 하나님은 지존하시고 우리 주님만 지극히 크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에는 다 의미가 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의입니다. 먼저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고, 주님 말씀을 거부했기에 의로울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주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들의 의가 왜 문제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마23:2~3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이제 말씀을 정리하고 마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바 율법과 선지자는 하나님 말씀 전체를 의미합니다. 그 하나님 말씀의 점 하나 획 하나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지금 이 마지막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에 도전하고 거역하려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지키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 말씀 중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그리하면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가 될 것입니다. 아주아주 작아질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우리가 누릴 천국에서의 지위는 영구한 것입니다. 중간에 잘~해서 바꿀 수 있는 그런 게 아닙니다. 여기서 잘 준비해야만 합니다. 누구든지 지극히 작은 계명이라 할지라도 행하며 가르치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가 될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훈육하고 양육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을 통해 100% 계시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100% 성취될 것입니다. 점 하나 획 하나도 없어지지 아니할 말씀을 붙잡고,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며 늘 전진하시는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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