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13:28~37
배우고 알아 주의하고 깨어 있으라
28.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29.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30.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31.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2.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3.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34.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35.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36.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37.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어떤 사람이 자신이 알지 못했던 무엇을 ‘배웠다’라고 하면, 그는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불신자가 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믿으면서 성경 말씀을 접하고 하나씩 배우게 되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눈으로 세상과 인생을 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고차원적인 세상 학문을 배우지 않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우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와 앞으로 일어날 일 등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불신자인 박사보다 예수 잘 믿는 중학생이 더 지혜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유튜브에서 우리나라 성도 수가 전체 인구의 10% 정도로 줄어들 것이라는 1년 전 기독 뉴스를 보았습니다. 거기에 달린 댓글은 거의 전부가 ‘잘 됐다’, ‘좋은 소식이다’ 라는 반응이었습니다. 그중에 이런 댓글이 있었습니다. 양자역학을 배우는 시대에 누가 베이비붐 세대 사람들이나 믿던 아담과 하와, 선악과, 원죄 등 그런 이야기를 믿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성경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는 의미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학과 과학이 제아무리 발전했다고 해도, 여전히 인간은 자신의 인체나 질병의 원인에 대해 일부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과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에서 먼지 크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 먼지와 같은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극히 일부분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창세기를 비롯한 성경 말씀은 신화나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창8:1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이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노아 시대의 홍수로 인해 늘어난 물을 바람으로 말리셔서 다시 궁창으로 돌아가게 하셨다는 것인가요? 아니지요. 땅 위에 바람을 불게 하셔서 북극과 남극으로 보내어 얼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이 북극의 빙산과 남극의 빙하가 급속도로 녹아서 지구상에 활동하는 물의 양이 엄청나게 많아진 결과로 지금 천재지변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의 홍수와 그 결과로 많아진 물이 줄어든 것도 성경 말씀으로 증명되고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의 교훈을 통해서 동성애는 하나님께서 유황불로 멸하실 정도로 미워하시는 죄악임을 배우게 됩니다. 그런데 교회 집사 출신(지금은 교회 안 나가는 불신자라는 말)인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동성애자들 불쌍하잖아요. 그러니 (동성애를 하더라도) 이해를 해야죠...” 이 사람은 성경에서 제대로 배운 게 없는 사람입니다. 만약 내가 사는 집 옆에 유황불이 떨어진다고 해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아~ 유황불이 떨어질 일이 없으니 그런다구요? 소돔 유황불보다 더 무서운 불이 기다리고 있다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말씀을 보고 듣고서도 배우고 깨달은 게 없다면 배운 게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배우라”고 하십니다. 한국 교계를 시끄럽게 했던 사이비 종말론의 폐해는, 마지막 때를 대비하는 데 있어서 마치 양치기 소년에게 속은 것처럼, 우리의 자세를 무뎌지게 했다는 데 있습니다. ‘주님이 오시려면 아직 멀었잖아...’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분명히 명령하십니다. 마지막 때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2천 년 전에 이미 말씀하셨으니 지금은 그 때가 더욱 임박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화과나무 가지에 물이 올라 부드러워지고 잎사귀가 나면 여름이 가까워진 것을 알 수 있듯이, 주님께서 이런 일이 있으리라 말씀하신 것들이 하나씩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되면, 인자가 가까이 문 앞에 오신 줄 알아야 합니다.
‘알다’ 라는 것은 먼저 배우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안다는 것은 눈으로 보고 머리로 깨달아서 이미 배운 것들이 내 것이 되는 과정입니다. 수학에서 인수분해를 배운 것과 아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배웠다고 아는 것은 아니니까요. 배웠지만 어떤 문제를 줬을 때 풀지 못하면 아는 게 아닙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웠다고 할지라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통해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아무 생각없이 산다면 마지막 때를 아는 사람은 아닌 것입니다. 지금은 주님께서 문 앞에 가까이 오셔서 서 계시는 때임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일(들)”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이 일은 오늘 본문 말씀 앞부분인 막13장에서 말씀하신 일들입니다. 이 일들은 주님께서 승천하신 이후부터 이루어진 일도 있고, 지금과 앞으로 계속 일어날 일들입니다.
몇 가지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뜨려진 것입니다(1~2절). 주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사흘 만에 새로운 성전을 지으셨습니다. 짐승 제사를 폐하시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는 새 성전을 지으셨기에 기존 성전은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목하 이스라엘은 제3성전을 세울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고 알려져 있지만, 주님께서 이 건축허가 신청을 반려하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둘째, 가짜 그리스도의 등장입니다.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것들에 미혹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5~6, 21~22절). 셋째, 난리와 난리가 있을 것이고,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고, 곳곳에 지진과 기근이 있을 것입니다(7~8절).
넷째, 믿는 자들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9절). 지금은 권력자들이 교회와 성도들의 눈치를 보지만, 성도의 숫자가 지금보다 더 줄어들고 그나마 있던 교회의 영향력이 더 줄어든다면, 차별금지법 같은 것을 만들고 믿는 우리를 핍박하게 될 것입니다.
다섯째, 믿는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13절). 믿는 우리가 아무리 착하게 살고 좋은 일을 많이 해도, 단지 예수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세상 사람들에게 극도로 미움과 차별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파와 좌파가 정치적으로 늘 으르렁대고 싸우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 공격하는 일에는 하나가 됩니다.
여섯째, 전무후무한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19절). 이 환난은 구원과 연계된 환난이 될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 환난의 날을 감하지 않으신다면 어떤 육체도 구원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을 감하실 것이라 말씀하십니다(20절).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전무후무한 환난이 올 때는, 이미 택함 받은 자들이 정해져 있을 것이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일곱째, 그 환난 후에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24~25절). 지구상에 거주할 인간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만드신 일월성신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될 것입니다. 지구상에 종말적인 극심한 격변이 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함께 30절 말씀을 합독하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이 세대는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세상입니다. 이 세상이 끝나기 전에 주님께서 경고하신 이 모든 일들이 하나도 예외 없이 다 이루어질 것임을 선포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이어서 31절 말씀도 합독하겠습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할렐루야!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완성자로 오셔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8)고 말씀하셨습니다. 동일선상에서 주님은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도 없어지지 않으리라 선포하셨습니다.
사람이 한 말이라도 문자로 기록되면 아주 오래도록 남을 수 있습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우리 주님의 말씀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살아서 역사하고 계시며, 성경을 통해 기록되어 우리에게 들려주신 모든 말씀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말씀은 성취되기 위하여 선포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계시던 말씀으로 말미암아 만물이 지음을 받았듯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선포하신 말씀도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천지 창조라는 결과물을 남기신 것처럼 성취라는 결과물을 반드시 남기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전무후무한 환난이 지난 후 일월성신이 제 기능을 잃게 될 그 때,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시는 것을 사람들이 보게 될 것입니다(26절). 또한 그 때에 인자가 천사들을 보내어 천지 사방에서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모으실 것입니다(27절).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 날과 그 때가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시며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십니다. 아들이신 예수님이 몰라서 모르신다고 하신 게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전적인 권한임을 인정하신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주님도 모르신다고 하시는 그 날과 그 때를 감히 신학자들을 비롯한 그 누가 어떻게 알겠으며 함부로 자기의 견해를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하기에 우리는 주의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 날과 그 때에 대한 잘못된 지식이나 확신을 가지고 방심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그 날과 그 때를 모르기에 항상 조심하고 주의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깨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중에는 문자적으로는 4번(33,34,35,37절) “깨어 있으라”고 하셨지만, 실제로는 3번(33,35,37절)입니다. 주님께서 매우 강조하여 말씀하셨음을 알게 됩니다.
오늘 주님 말씀에 의하면 집을 떠나는 주인이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에서 중요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일을 맡기고 떠난 주인이 저물 때, 밤중, 닭 울 때, 새벽 중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하시면서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말씀하신 모든 때가 느슨해지고 깊은 잠을 자는 때입니다. 그러나 그런 때도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한밤중 즉 모든 사람이 자고 있을 때라도 주님은 오실 것이므로 주의하고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오셨을 때 우리가 자고 있는 모습 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36절).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하신 우리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는 모든 자들이 주의하고 깨어 있기를 원하십니다(37절).
지금 이 시대 마지막 때는 많은 자들이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든 때입니다. 주인되신 주님이 돌아오실 때 우리가 자고 있으면 안 된다고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육신은 밤이 되면 자야 하지만, 영은 잠들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권한을 주시고 그에 따른 사무(업무)를 주셨습니다. 이 업무는 영적으로 잠들지 않고 감당해야 하는 업무입니다. 우리의 능력대로, 권한을 주시고, 일을 맡기셨습니다. 할렐루야!
이제 말씀을 정리하고 마치겠습니다.
말씀을 통해 이 마지막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잘 배우시기를 축복합니다.
모르면 준비하지 않는 자가 됩니다. 주님께서 아주 가까이 문 앞에 오셨음을 알고 준비하시길 축복합니다.
말씀으로 창조된 결과물인 이 세상이 없어질지라도 주님의 말씀은 하나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렇기에 행여라도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게 되지 않도록 우리의 언행을 조심하고 경거망동하는 자들을 멀리하시기 바랍니다.
그 날과 그 때를 알 수 없으므로 우리는 주의해야 합니다. 그 날과 그 때를 알려주겠다는 가짜들이 더욱 판을 칠 것이기에, 늘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설마 이런 때 오시겠냐 라고 생각하여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홀연히 오실 것입니다. 그래서 절대로 잠들면 안 됩니다. 주님 오시는 날까지 항상 깨어 있으시길 소망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강력하게 당부하신 말씀임을 꼭 기억하면서, 다시 오시는 주님을 제일 앞에서 환영하는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축원합니다.
Copyright © 2024 by Paul Han
oldandnewtestament.tistory.com
'설교 원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히스기야의 신앙개혁 (7) | 2024.12.05 |
---|---|
미니스트리(ministry)로서의 생업 (4) | 2024.10.11 |
회막을 향하여 사방으로 (8) | 2024.09.28 |
점 하나, 획 하나도 (2) | 2024.09.22 |
거룩한 분노가 필요한 시대 (5) | 2024.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