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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창세기49장

창세기 49장

 

49장을 천천히 읽으세요.

 

요약: 야곱은 이제 아들들을 불러모아 놓고 마지막으로 유언하며 축복한다. 그는 자신이 죽으면 가나안 막벨라 밭 굴에 자신을 묻어 달라고 한다. 야곱은 이 땅을 값주고 산 것임을 강조함으로써, 그 무덤의 구입이 의미있는 일이었음을 강조한다. 야곱은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한다.

 

 

너희의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1절)

 

    야곱은 죽기 직전에 자신의 12아들들을 불러 놓고 장래 일어날 것이거나 이루어질 일을 유언의 형식으로 예언한다. 이것은 400여 년 뒤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간 이후에 되어질 일들이다.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3절)

물의 끓음 같았은즉… (4절)

 

① 야곱의 장남, 야곱의 능력(might), 야곱의 기력(strength)의 시작인 큰 아들이다. ‘위광이 초등하고’는 ‘위엄(dignity)이 뛰어나고’의 뜻이다. 장남으로서 위엄이 있고, 권능(power)이 탁월했지만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범죄로 인해 장자권을 박탈당한다.

② ‘물의 끓음 같았은즉’은, KJV ‘unstable as water’(물(이출렁거리는 것)처럼 불안정했으므로), NIV ‘turbulent as the waters’(흐르는 물의 소용돌이 같았으므로), NLT ‘as unruly as the waves of the sea’(파도가 출렁거림 같았으므로), NASB ‘uncontrolled as water’(통제할 수 없는 물 같았으므로) 등으로 번역되었다.

③ 르우벤은 훌륭한 자질을 소유하고 장자권까지 누릴 수 있었으나, 20대에 있었던 패륜사건으로 인해 아버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고 장자권을 빼앗기는 결과를 남겼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5절)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7절)

 

① 야곱의 마지막 유언에서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의 인생여정 중에서 자신에게 충격(impact)을 준 사건을 일으킨 아들들에게 축복은커녕 징벌에 가까운 예언을 쏟아내고 있는 점이다. 그러니까 축복권자인 아버지의 입장에서, 지극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그리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야곱의 이 유언을 통해 볼 때, 야곱은 세겜성 살륙사건에서 큰 충격을 받지 않았겠느냐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세겜성 사건의 직접적 원인이 된 디나 강간사건에서 두 친오빠들의 입장은 아버지와는 전혀 달랐다고 하겠다. 개역개정은 ‘잔해하는 기계’를 ‘폭력의 도구’로 바꿨다.

② 34장에서 세겜성 사건의 당사자 시므온과 레위의 행동에 대한 평을 여기로 미룬 바가 있다. 어찌보면 이 두 사람은 아버지의 예언대로 큰 족속을 이루지 못했다든지(시므온 족속), 땅을 소유하지 못하고 흩어져서(레위 족속) 살아야 했다. 그렇다고 이 두 족속이 하나님 보시기에도 별 볼일 없는 삶을 살았던 것일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삭이 속아서 야곱에게 축복했어도 그게 이뤄졌고, 야곱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축복했어도 그대로 이뤄질 것이었다. 아버지들이 자식들에게 선포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인정하시고 그대로 이뤄지게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레위족속을 선택하셨고, 직접 선택하신 자들을 들어 쓰셨으며(예, 모세), 하나님께 대한 열심있는 개인과 가정과 가문을 쓰셨다(예, 아론과 그의 가정).

③ 야곱의 예언을 다시 한번 설명한다면, 숲을 보는 것과 같이 12지파의 전체적인 그림은 맞아 떨어진다고 하겠다. 그러나 각각의 나무를 볼 때는 상당히 다른 면도 있다고 하겠다. ‘유다의 숲’ 속에 ‘다윗 나무’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못된 나무, 쓸모없는 나무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8절)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9절)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10절)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11절)

그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 이는 우유로 인하여 희리로다 (12절)

 

① 레아가 넷째 아들을 낳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지은 이름이 ‘유다’였다(29:35). 그는 그 이름대로 형제들에게 ‘찬송’을 받는 존재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그를 메시야 언약을 이루어 갈 자손으로 선택하셨다. 그렇기에 유다가 살면서 몇가지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하긴 했지만 그것 때문에 그가 선택되었다고 보는 것은 바른 시각은 아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유다로 이어지는 라인을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요 섭리인 것이지 유다 자신의 공(功)이나 능력은 아니다. 그리고 그의 위 3명의 형님들이 잘못한게 있어서 유다가 어부지리로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도 올바른 관점은 아니라고 하겠다.

②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는 3:15의 메시야 언약,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를 떠오르게 한다. 물론 유다의 후손인 다윗 왕과 같은 사람이 원수의 목을 잡는 일을 했지만,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정한 원수의 머리를 상하게 하신 사건이 이 야곱의 예언에 부합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③ 유다를 사자에 비유한 것은 뒤에 이어지는 10절과 관련하여, 그의 후손들이 사자와 같이 힘있는 존재,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자손들이 된다는 의미라고 하겠다. “홀(개역개정은 ‘규’)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이라고 했으므로, 이스라엘의 왕권은 유다의 후손인 다윗에게 계속 이어진다. 이 왕권은 ‘실로(Shiloh)’ 즉 ‘메시야’가 오심으로 정점에 이른다. 그분께(to Him) 모든 백성이 복종하게 될 것이다. ‘10절의 ‘그에게’ 에서 ‘그’를 유다로 보지 않고 메시야로 보고자 한다. 복종’(obedience)이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그분은 통치권을 가지신 왕으로 오시는 것이 분명하다. ‘실로가 오시기까지’를 ‘그분이 실로에 오실 때까지’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경우 ‘그분’이 ‘메시야’가 된다.

④ 11~12절을 유다 후손의 풍요로운 생활을 묘사하는 것으로 보는 해석이 있으나 바르지 않은 해석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 두 구절을 ‘실로’와 관련된 내용으로 보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11~12절은 해석이 쉽지 않은 부분이다. 이하 다음과 같이 해석해 보고자 한다. 11절의 ‘그의 나귀’ ‘그 암나귀 새끼’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믿어야 할) 사람들로 보고, ‘포도나무’ ‘아름다운 포도나무’를 예수 그리스도 로 보고자 한다. 요15:1,5 에 따르면 포도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우리는 그 포도나무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가지로서 붙어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 포도나무에 매는 것과 그 의미에 있어 상통한다고 생각된다. ‘ 옷’ ‘ 복장’의 ‘’는 포도나무에 매여 있는 자를 말하고,  옷(의복)을 포도주(포도즙)에 빤다는 뜻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한 속죄의 의미라고 사료된다.

⑤ 12절의 ‘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이는 우유로 인하여 희리로다’ 에서 ‘’는 ‘그 옷’을 빤 자를 말한다. 본 절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가진 자는 흔적이 있고, 우유처럼 희게 속죄받은 자가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가나안에서 흰 것으로 우유가 흔했겠으므로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된다.

 

 

스불론은 해변에 거하리니… (13절)

 

    같은 아들인데, 유다에 대한 예언과 비교가 될 정도로 차이가 난다. 어쨌든 스불론지파는 지중해와 갈릴리바다 사이에 거주하게 된다. 배 매는 해변이라고 지칭한 것을 보면 지중해변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지경이 시돈(Sidon)까지 될 것이라 한 것을 보면 그들은 무역에 관계되었고, 그들의 무역선이 북쪽에 있는 시돈항까지 다니며 상업을 하지 않았겠나 생각된다.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 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14절)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15절)

 

    잇사갈(레아의 5남)은 스불론(레아의 6남)의 형이었음에도, 스불론의 그늘에 가리워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신33:18). 실제로 잇사갈 지파가 차지한 영토는 스불론 지파가 차지한 땅의 바로 아래에 붙어 있었다. 야곱의 예언대로 본다면, 잇사갈 족속은 건장한 나귀처럼 일을 감당했으리라 생각되고,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노예와 같이 육체적으로 힘든 생활을 했으리라 짐작된다.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같이 그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16절)

단은 길의 뱀이요… (17절)

 

    단 지파가 실제로 어떻게 심판자의 역할을 수행했는지의 여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단 지파인 삼손이 20년 간 이스라엘의 사사(Judge) 직분을 수행했다. 17절이 의미하는 바는 좋은 의미는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뱀, 독사, 떨어지게 하는 자(실족시키는 자) 등의 호칭으로 봐서 그렇다. 단 지파는 사사시대에 신상을 세우고 섬겼으며(삿18:30~31), 왕정시대에는 그들의 땅이 여로보암이 만든 금송아지를 섬기던 장소가 됨으로써(왕상12:28~30) 이스라엘 백성들을 실족시키는 일을 했다.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18절)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야곱이 힘들게(?) 예언을 하다가, 막간을 이용해 숨을 돌리고 있다. 그런데 아주 멋진 표현을 썼다.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야곱이 기다리는 구원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자신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를 대망하고 있다. 성경은 각기 다른 사람들에 의해, 각각 다른 시대에 쓰여졌음에도 곳곳에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를 일관되게 언급하고 있다. 창세기 앞 부분(3:15)에 약속된 그 언약을 이제 창세기 뒷 부분에서 기억시켜 주고 있다. 야곱은 자신의 후손을 포함한 뒤에 오는 모든 세대를 대표하여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보)고 있다.

 

 

갓은 군대의 박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19절)

 

    갓 지파가 자리잡은 터전은 요단 동편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였던 얍복 나루터가 있던 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동방 사람들이 거주하던 지역이었는데, 특히 갓 지파의 바로 아래에 거주하던 암몬 족속등과의 분쟁이 심했을 것으로 보인다. 요단과 사해 동편에 거주한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여러 다른 지파들과 떨어져 있는 관계로 이방 족속의 침입에 대항하여 방어책을 세워야 했기에, 그 역할을 감당할 갓 지파에 대해 언급하는 예언으로 생각된다.

 

 

아셀에게서 나는 식물은 기름진 것이라… (20절)

 

    아버지 야곱의 축복을 보노라면 상당히 차별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런데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복을 받은 사람이다. 하나의 민족과 나아가서 국가를 이루려면, 왕도 나와야겠지만 평민도 하층민도 필요한 것이다. 아셀 지파는 위대한 지파는 되지 못했더라도, 나름대로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다. 아셀에게서 나는 식물(food)이 기름지다 라는 것은, 그들이 좋은 땅을 차지해서 좋은 먹거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감당할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왕의 진수까지 제공하게 될 정도로 그들의 땅은 최상급이 될 것이었다. 훗날 모세의 축복에서는 한술 더 떠서,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그 발이 기름에 잠길지로다”. 사람이 좋은 음식을 먹게 되면 기분이 좋거나 즐거워지듯이, 아셀 지파 사람들은 다른 형제들에게 기쁨을 주었나 보다(신33:24).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21절)

 

    몇몇 아들들은 짐승에 비유되었는데, 유다는 사자 즉 왕권을 소유하게 되리라는 의미에서 맹수의 왕으로 비유되었다고 생각된다. 그외의 아들들은 사납거나 도움이 안되는(?) 짐승에 비유되었다. 그런데 납달리는 온순함이 양에 버금가는 사슴에 비유됨으로서 납달리 지파가 다른 지파들과는 달리 유순한 성질을 가지지 않았겠나 생각된다. 납달리 지파는 가나안 최북단으로 이주한 단 지파 바로 밑에 정착하였다. 후일 모세는 납달리에게  (북방에서) 서방과 남방을 얻으라는 축복을 한다(신33:23). 동서남북을 사슴처럼 뛰어다니라는 의미인지…. ‘아름다운 소리’(beautiful words)와 관련해서는, 납달리 지역에서의 예수님의 사역과 관련이 있지 않겠나 추측해 볼 수 있겠다(마4:13~16, 참고☞사40:9, 61:1).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22절)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23절)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24절)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25절)

네 아비의 축복이 내 부여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26절)

 

① 22절은 현재 요셉의 상태를 말해주는 것으로 봄이 좋겠다. 샘 곁의 무성한 가지가 담장을 넘는 것처럼, 풍성하고 넉넉한 복을 받았음을 비유한다고 생각된다.

② 활쏘는 자가 타깃(target)을 노림같이 그를 노리고, 활을 쏘며 괴롭혔지만 야곱의 전능자(the Mighty one of Jacob)께서 도와주셨다. 요셉은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죽을 뻔 했고, 이집트에서도 그를 노리는 손길에서 구원받았다.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를 개역개정은 매끄럽게 고쳤다. ☞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NLT Bible 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But his bow remained strong, and his arms were strengthened by the Mighty one of Jacob, the Shepherd, the Rock of Israel.”(그러나 그의 활이 강했고, 그의 팔은 힘이 있었는데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목자요 반석이신 하나님 때문이었다). 개역한글의 ‘그로부터’ 와 ‘나도다’ 등은 번역상 필요없는 어색한 표현이다.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를 앞의 ‘야곱의 전능자’ 와 붙여서 번역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 될 것이다.

③ 25~26절의 축복은 이스라엘을 이루는데 공헌한(할) 요셉에게 내려진(질) 축복의 정수를 보여준다. 더 이상의 축복이 있을까? 아버지 야곱의 축복이 조상의 축복을 뛰어넘는 까닭은, 야곱이 조상들보다 더 큰 복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스라엘’의 복을 받았다!

④ 아버지의 축복은 유다와 요셉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이 두 사람에게 편중돼 있다. 그런데 이것은 ‘각인各人의 분량대로’(appropriate to him) 한 것이었다(28절).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의 후손들만 잘 되고 나머지는 들러리냐 하면 그건 아니다. 야곱의 12아들들로 시작된 이스라엘 민족은, 큰 민족을 이루고 출애굽하여 나름대로 여러 사건을 겪으며 하나의 이스라엘로 만들어져 가게 된다.

 

 

베냐민은 물어 뜯는 이리라… (27절)

 

    막내 아들을 이리(wolf)에 비유한 것으로 봐서, 베냐민의 후손들은 좀 독한(?) 사람들이 아니었나 싶다. 사울왕이 다윗을 늑대처럼 잡으러 다닌 것도 그렇고^^. 베냐민 지파의 호전적인 성격은 삿19~20장의 ‘기브아 사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모세는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 라고 축복했다(신33:12).

 

 

내가 내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부여조(父與祖)와 함께 장사하라 (29절)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30절)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31절)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32절)

 

①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가나안을 떠나며 브엘세바에서 희생을 드렸을 때, 그에게 나타나셔서, “정녕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라고 약속하셨다(46:4). 그후 이집트에 들어와 17년을 거한 후, 죽을 때가 다 되어 요셉을 불러 특별히 자신을 가나안 선영에 장사해 줄 것을 맹세시킨다. 이제 야곱은 숨을 거두기 직전 12아들 앞에서 다시 한번 유언을 한다. 야곱이 막벨라 굴에 묻히는 것은 야곱의 의지이기 전에, 하나님의 뜻이요 약속임을 기억해야 한다.

② 야곱은 아마도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마지막 말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아들들이 막벨라 굴의 위치와, 누가 묻혀 있는 곳인지 모를까봐서 알려주고 있는 것일까? 이런 목적 때문에 그랬으리라 짐작해 본다. 첫째, 막상 그가 죽은 후에 거리도 멀고 번거롭고 하니 그냥 여기에 묻어드리자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그랬다. 둘째, 아들들이 아버지의 유언이니만큼 잘 듣고, 자신의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잘~ 알려주라는 목적을 가지고 그랬으리라 생각된다.

③ 앞의 23장에서 아브라함의 ‘막벨라 굴 매입’ 의 의미를 설명한 바 있다. 후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묻혀 있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수 있는 명분과 근거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④ 야곱은 (자신의 조부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값을 주고 산 땅임을 이야기한다. 누구에게 샀는지를 콕집어 얘기한다. 아브라함은 그냥 쓰라는 에브론의 호의를 따르지 않고 은 400세겔을 값으로 치룬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땅의 소유권이 이스라엘에게 있는 것이다. (야곱이 묻힌 후) 400년이 지나도 이 사실과 법적 소유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400세겔과 400년이 묘한 매치를 이룬다.

 

 

 

[문제49-1] 다음 중 야곱의 축복 내용 중 틀린 것을 고르세요.

① 르우벤은 지난날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힌 일로 탁월치 못하게 되었다.

② 시므온과 레위에겐 저주를 퍼부었다.

③ 레위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하나님께도 쓰임받지 못하는 흩어짐을 당했다.

④ 왕의 홀(규)이 유다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⑤ 실로(Shiloh)는 지역을 말하기도 하지만, ‘메시야’를 의미하기도 한다.

 

 

[문제49-2] 다음 중 틀린 것을 고르세요.

① 스불론의 지경은 ‘시돈’까지 될 것이다.

② 잇사갈은 압제 아래서 섬기게 될 것이다.

③ 단은 심판자로서, 형제를 일으켜 세워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④ 갓은 침략자의 침략을 받으나 도리어 반격하게 될 것이다.

⑤ 아셀은 왕의 진미를 공급하게(생산하게) 될 것이다.

 

 

[문제49-3] 다음 중 틀린 것을 고르세요.

① 야곱이 요셉에게 한 축복은, 야곱이 조상에게 받은 그것보다 큰 것이었다.

② 요셉의 활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올 것이다.

③ 요셉은 샘 곁의 무성한 가지에 비유되었다.

④ 야곱은 아들들에게 자신을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조상과함께 장사할 것을 명한다.

⑤ 야곱이 들어갈 무덤에는 그의 조부모, 부모, 레아가 묻혀 있다.

 

 

[문제49-4] 다음 중 야곱의 아들들과 비유한 짐승들 중 틀린 것을 고르세요.

① 유다 – 사자

② 베냐민 – 이리(늑대)

③ 납달리 – 사슴

④ 잇사갈 – 나귀

⑤ 시므온 – 소

 

 

암송 구절

8절

10~12절

18절

22~25절

29~32절

 

 

정답

[문제49-1] ③

[문제49-2] ③

[문제49-3] ②

[문제49-4] ⑤

 

 

 

Copyright © 2009 by Paul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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