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7장
창7장을 읽으세요.
요약: 노아와 그의 가족은 방주로 들어가게 되고 사십 주야를 내린 비로 말미암아 모든 생명은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모세는 인류 멸망의 커다란 사건을 너무나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창조 시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시며 좋아하시던 하나님과는 대조적으로 그들을 멸하셔야만 했던 여호와의 마음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 같다. 이런 분위기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모습에서도 발견된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독생자를 내놓으셔야 했던 그 아버지의 마음을, 너무나 단순하게 처리하신 성령님의 모습에서, 애써 외면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게 된다.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1절)
①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한(
② 노아를 통해서 ‘의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는 사람이다. 노아가 여호와의 세상 멸절 계획을 듣고 알되, 실제로 방주를 만드는 일을 하지 않았다면 의로운 사람은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만 가득한 썩어빠진 시대에 노아는 여호와 앞에 의로운 사람이었다. 그가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준행한 사람이었음은 5절에서 다시 한번 확인된다.
③ 여기서 '보다'에 해당하는 (히)'라아'는 '인정하다'는 뜻이다(왕상21:29). 즉 하나님 앞에서 노아의 의로움이 인정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결한 짐승, 부정한 짐승 (2절)
정 부정 규례가 모세 시대에 와서 정해졌으므로 아직 그 구분이 불가능 했을 것인데 노아는 어떻게 구분했을까? ①하나님께서 직접 노아에게 알려 주셨을 것이라는 견해이다. ②방주에 들어갈 때 나아 온 짐승으로 자연히 구분했을 것이라는 견해이다. 이는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 (2절)
암수 둘씩 이라고 하면 두 쌍 즉 4마리로 생각하게 되나, 이는 암수 한 쌍 즉 2마리가 옳다.
지금부터 칠 일이면 (4절), 칠 일 후에 (10절)
① 비가 내리기 전의 이 7일을 세상 사람들이 회개하거나 마음을 바꿔 방주에 탈 수 있도록 주어진 마지막 기간 등으로 봐서는 안된다. 방주에 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노아와 그의 집안 사람들로 이미 확정되었다(
② 따라서 이 7일이라는 기간은 방주에 노아의 가족들과 그밖에 호흡하는 생물들이 승선하는 기간이 된다. 그만큼 많은 생명체가 방주로 들어갔다는 반증이 된다.
③ 반면에 방주로 들어갈 모든 생물체가 들어간 후에 홍수가 시작되면 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확정된 심판의 시작을 명확히 알려주셨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드러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통해 그 시기를 알려주셨다. 오히려 더 필요할 것 같은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시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노아가 방주에 승선하고 있을 때 세상 사람들은 그를 보면서 손가락질을 했을 것이고, 오늘날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으므로 그들에겐 무의미하거나 공허한 메아리가 되기 때문이다.
④ 하나님께서는 홍수가 시작되기 7일 전 여유있게, 구원받을 사람들과 짐승들을 방주 속으로 들어가게 하셨다. 그들은 안전하게 방주에서 기다리면 됐다. 마지막 날에 우리도 교회의 머리 되신 주님을, 안전한 방주와 같은 교회 안에서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우리의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않게 하실 것이다(눅21:18).
사십 주야 (4절)
성경에서 40이 시사하는 것은 ‘고난’ ‘어려움’ 등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40년, 모세의 40년 광야훈련, 예수님의 40일 금식등에서 볼 수 있듯이, ‘꽉 들어찬’ 것 같은 고통의 숫자이다. 40주야의 홍수는 완벽한(?) 홍수였을 것이다.
★ 노아와 그의 온 집이 구원 받게 된 이유
① 하나님 앞에 노아는 의로운 자였다. 노아의 아내나 아들들이 의로웠는지는 성경이 명확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 어쨌든 한 사람 노아의 의로움 때문에 나머지 가족이 구원받았다고 해도 틀리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노아의 가족들이 세상 사람들처럼 악한 사람들은 더더욱 아니었을 것이다. 여기서 ‘의롭다’(righteous)는 것은 ‘도덕적’인 의미에서의 그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칭찬받을 만한’ ‘세상 사람과 다른’ 사람이었다는 뜻이다. 즉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노아의 의로운 영향력이 그의 가족들에게 흘러갔을 것이다. 나의 선한 영향력이 옆으로 흘러 넘치게 하라!
② 노아는 순종하는 사람이었다.
[문제7-1] 다음 중 틀린 내용은?
① 방주에는 총 8명이 들어갔다.
② 방주에 들어간 짐승은 암수 한쌍씩이었다.
③ 다 들어간 후 방주의 문은 노아가 닫았다.
④ 물이 150일 동안 땅에 가득했다.
⑤ 40일 홍수 후에 방주는 땅에서 떠올라 이리저리 떠다녔다.
[문제7-2] 다음 중 틀린 것을 고르세요.
① 정결한 짐승과 공중의 새는 암수 7쌍씩 방주로 들어갔다.
② 부정한 짐승은 암수 2쌍씩 방주로 들어갔다.
③ 노아가 600세에 홍수가 있었다.
④ 비가 온 후 물은 점점 많아져 천하에 높은 산이 덮였고 물은 더 많아져 십오 규빗이나 더 높아졌다.
⑤ 땅 위에서 코로 호흡하는 모든 생물은 다 죽었다.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11절)
①
②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거꾸로 되돌리신 상태가 됐을 때, 인간에겐 재앙과 죽음이 되었다. 하나님의 창조를 인정하라!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 (16절)
① ‘그’는 노아를 지칭한다. NLT 바이블은 ‘shut them in’ 이라고 하여, ‘그들’이라고 지칭했다. ‘그들’은 노아와 그의 가족을 말한다.
② 이 부분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여호와께서 방주의 문을 닫으셨다는 사실이다. 이는 구체적이요 실제적인 사실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노아를 방주에 타게 하신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일까? 홍수가 걷힌 후 방주의 뚜껑을 연 사람은 노아가 맞다. 그러나 그것은 방주의 문(
③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는 표현은 매끄러운 표현은 아니다. NASB 가 이 부분을 가장 정확히 표현했다. “the LORD closed it behind him”(여호와께서 그[=노아]의 뒤에 있는 그것[=방주의 문]을 닫으셨다)
물이 땅에 더욱 창일하매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더니 (19절)
물이 불어서 십 오 규빗이 오르매 산들이 덮인지라 (20절)
① 노아의 홍수를 포함한 구약의 큰 사건들을 ‘설화’ 정도로 보는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가 담긴 구절이다. 홍수가 나서 천하의 높은 산이 다 덮여가고 있었다. 여전히 몇 개의 산은 여전히 완전히 물에 잠기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15규빗의 물이 더 불어나게 하셨다. 이제 모든 산들이 완전히 잠기게 되었다.
② 15규빗이라면 7~8미터 정도되는 높이다. 얼마 안된다고 생각되는가? 그게 아니다. 전 지구적으로 15규빗의 수위를 높이려면 엄청난 양의 물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막연히 물에 잠겼으리라 추측해버릴 인간들에게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시며, 그런 큰 일을 하신 분이심을 알려주신다.
성경 써보기
벧전3:20
히11:7
벧후2:5
핵심 한 줄
⒜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실행하는 자가 의로운 자이다.
⒝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실 계획과 시기를 세상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알려주신다.
⒞ 방주에 승선하는 7일의 기간은 세상 사람들에게 주어진 기간이 아니다.
⒟ 하나님의 명령에 간접적으로 순종하여 복을 받은 사람들의 예는 노아의 가족, 이삭 등을 들 수 있다.
⒠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는 아름답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하면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위해 창조 질서를 뒤집으실 수 있다. 그게 노아 홍수 사건이다.
암송할 구절
1절
4절
5절
11~12절
16절
21절
22절
23절
정답
[문제1-1] ④
[문제1-2] ②
[문제1-3] ⑤
적용
㈎ 노아 홍수 사건을 단순한 설화로 봐서는 안될 이유를 찾아 얘기해 보자.
㈏ 노아의 방주와 오늘날 교회의 공통점이나 유사점을 얘기해 보자.
㈐ 인간이 범죄가 임계점에 다다르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 하나님께서 6일 만에 창조하신 세상을 거꾸로 돌려 놓으신 사건이 홍수 심판이다. 그것은 특히 창조 시 몇 번째 하신 어떤 일인지 얘기해 보자.
㈑ 노아처럼 나의 하나님을 향한 선한 그 무엇이 가족과 이웃 등에 흘러 넘치게 하려면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얘기해 보자.
Copyright © 2009 by Paul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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