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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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가나안 귀향 길목에서 들려오는 에서의 소식은 야곱의 간이 콩알만해지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이제 그는 최후의 순간에 피할 계산까지 하며 하나님께 간구한다. 방대한 선물꾸러미를 앞세우고, 홀로 남은 야곱에게 하나님께서는 져 주시는 씨름을 하시고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꿔 주신다.
하나님의 사자(使者)들이 그를 만난지라 (1절)
①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가던 도중에 벧엘에서 사닥다리로 오르락내리락하는 하나님의 사자들을 본 후(28:12),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나 주신다.
② 28장에서의 사자들이 외로운 길에 야곱과 동행한다는 의미였다면, 지금의 사자들은 형의 보복이 있을까 두려워하는 늙은 야곱에게 필요한 군대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이것은 마26:53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천사= 군사 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③ 벧엘에서는 하나님의 사자들을 꿈 속에서 봤지만 여기서는 실제로 만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야곱이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난 것이 아니라, 사자들이 야곱을 만났다는 사실이다. 지난 20년 동안 고생도 많이 했지만 하나님께로부터 큰 복을 받은 야곱을 끝까지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을 이루어 주시려는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그를 만나 주신다.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2절)
① ‘마하나임’의 의미는 ‘두 진(陳)’(two camps) 또는 ‘두 떼’(two companies) 이다. 야곱이 언급한 ‘하나님의 군대’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야곱의 눈에는 군사들로 보였을 것이다.
② 야곱이 10절에서 고백한 대로,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고향을 떠났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두 떼’나 이루게 하신 것처럼, 20년이 지난 지금도 형의 보복을 두려워하며 전전긍긍하는 야곱에게 ‘두 진영’을 갖춘 든든한 하나님의 군대가 그를 지켜주시리라는 의미이다.
세일 땅 에돔 들 (3절)
① ‘세일’(Seir)은 사해(死海) 남쪽의 산지(山地)이다. 에서(Esau)는 세일 땅의 일정 지역을 본거지로 삼아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곳을 ‘에돔 들’(the country of Edom)이라고 표현했다. 야곱이 귀향할 당시에도 에서(Esau)는 여전히 자기 아버지 이삭에게서 완전히 분가하지 않은 상태였고, 활동무대는 집과 떨어진 세일 땅이었던 것 같다. 후일 야곱과 에서는 잠시(?) 한지붕에서 동거한 것으로 생각된다(36:7).
② 그 후 에서(Esau)는 야곱과 헤어져 온 가족과 온 소유를 이끌고 ‘세일 산’(hill country of Seir)으로 이주한 것으로 여겨진다(36:6~8). ‘에서’는 36:7에서 보는 바와 같이 땅이 부족하게 되자, 상속권을 포기한 장남으로서 아버지의 축복을 다 받은 동생을 뒤로하고 고향을 완전히 떠나게 되는 것이다. 기존의 모든 해석은 야곱이 가나안으로 들어오기 전, 에서가 먼저 세일로 떠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에서’는 야곱이 언제 올지 말지, 많은 재산을 가지고 올지 빈털터리로 올지 어떻게 알고 땅이 비좁을 것을 예상하고 미리 떠났을까?
③ 이렇게 정리해 보고자 한다. 야곱은 귀향 중 ‘숙곳’에서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의외로 오래 머무르는 것으로 생각된다(34장 참조).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왔으면 빨리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순서일텐데 그렇지를 못하고, 하나님께서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실 때까지(35:1) 상당한 기간을 머무른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 이삭에게로 돌아갔고, 그 때 잠시 에서와 같이 살았던 것으로 추측되고, 이후 에서는 정식으로 분가하는 것으로 사료된다. 이렇게 보지 않으면 36:6~7을 해석할 길이 없어 보인다.
내 주 에서에게 고하라 주의 종 야곱이… (4절)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더라 하라 (5절)
그가 사백 인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6절)
① 졸지에 에서는 주(主)(lord) 가 되었고, 야곱은 종(servant) 이 되었다. 하란에서 외삼촌에게 속고 고생하며, 20년 전 형에게 한 일이 생각나기도 했을 야곱은 이제 자신을 철저히 낮추고 형을 높여 그의 마음을 풀어주려고 하고 있다.
② 야곱은 또한 하란에서 모은 재산을 언급하며, 그것으로 형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를 떠보고 있다.
③ 그런데 이게 웬걸 에서를 만나고 돌아오는 사자들의 얘기는 나이 많은 야곱의 심장을 멎게 할 소식이었다. 에서가 자신을 골탕먹인 야곱을 겁주려 했는지 아니면 실제로 손 좀 봐주려고 했는지 아니면 20년 전 마음 먹은대로 죽이려고 했는지 모르지만 거의 사병(私兵) 즉 군대 수준의 400명 수하들을 거느리고 오고 있다는 전갈은 야곱의 간담을 서늘케 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distressed)… (7절)
① 그는 형 에서가 군대 규모의 사람들을 이끌고 자기에게 온다는 소식을 듣고 무엇을 했나? 그는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잔꾀 수준의 행위를 하고 있다. 야곱도 약한 인간이었으므로 어려움이 닥칠 때 두려워하며 나름대로 어떤 액션을 취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하란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갈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셨다면 그는 담대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지난날 형에게 실수라면 실수라고 할 만한 행동이 그의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야곱이 모태에서 나올 때 형 에서의 발목을 잡은 것처럼 그의 발목을 잡게 된 것이다.
② 야곱이 자신의 종자(從者)와 가축을 두 떼로 나누고, 한 떼가 공격을 당하면 다른 한 떼는 피하게 하려는 생각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에서의 군대는 느림보 오합지졸이 아니었을텐데 말이다.
③ 자신의 행동을 앞세운 후, 그는 9~12절과 같이 하나님께 기도(간구)한다. 그런데 우리는 야곱의 일견 어리석어 보이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행위가 이것으로 마지막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는 ‘얍복 나루 씨름사건’ 을 계기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의 조부 아브라함이 ‘이삭 번제사건’을 통해 성숙한 사람이 되었고, 부친 이삭은 ‘에서 축복 미수사건’(또는 ‘야곱 축복사건’) 이후로 다른 사람이 된 것과 같이, 그도 그 사건을 계기로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씨름 사건 이후로 그가 실수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단, 뒤의 ‘숙곳’에서 오래(?) 머무른 일은 예외로, 그의 여전한 실수로 여겨진다.
야곱의 간구 (9~12절)
① 9절에서는 28:13에서와 같이 ‘나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을 부르며 간구했다. 또한 하란에서의 생활을 접게 하시고 고향 족속에게 돌아가라 하신이가 하나님이심을 확인시켜 드리고 있다.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를 NIV (I will make you prosper)와 NASB (I will prosper you) 공히 ‘너를 번성케 하리라’ 로 했다. NLT는 ‘treat me kindly’ (진심으로 대해 주시기로) 로 했다.
② 10절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은총(lovingkindness)과 신실하심(faithfulness)이 너무 크시기에 맨손에 지팡이 하나만을 가지고 요단을 건넜으나 지금은 두 떼(two companies)나 이루어 주셨음을 감사드렸다.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에서 은총과 진리를, KJV는 mercy and truth (은혜와 진리) NIV는 kindness and faithfulness (후의와 신실하심) NLT는 faithfulness and unfailing love (신실하심과 변함없는 사랑) NASB는 lovingkindness and faithfulness (은총과 신실하심) 로 표현했다.
③ 사람이 나이를 먹고 인생의 연륜이 쌓이면, 무서울게 없고 겁나는 사람이 없으련만 그는 지금 형인 에서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고 했던가! 야곱은 과거에 아버지를 속임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형까지 속이게 된 일로 인한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에 힘들게 된 것이다. 그는 사 백명을 거느리고 오는 형 에서가 자신과 처자들을 공격(attack) 할까봐 겁먹고 있는 것이다.
④ 그는 12절에서 요단강가 모래밭 위에서 ‘네 씨로 바다의 모래와 같이 번성케 하리라’ 고 약속하신 것을 상기시켜 드리며, 혹시라도 자신과 처자들이 해를 입지 않게 해 주시도록 기도하고 있다.
예물(선물)을 준비하는 야곱 (13~20절)
① 암염소 200마리, 수염소 20마리, 암양 200마리, 수양 20마리, 새끼가 달린 젖나는 약대 30마리, 암소 40마리, 황소 10마리, 암나귀 20마리, 새끼나귀(또는 숫나귀) 10마리 도합 550마리+알파(젖나는 약대의 새끼 숫자) 가 된다.
② 형의 감정을 누그러뜨리려고 선물을 준비하는 야곱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더군다나 20년만에 힘들게(?) 만나는 형님에게 선물을 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에게 갈 축복을 가로챈 것에 비하면 작겠지만) 선물의 양이 크고, 그것의 전달방식이 얍삽맞아 보인다. 이것은 형을 속이거나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그가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는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실 때는 에서와의 문제도 해결해 주실 줄을 믿어야 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앞세움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많은 선물을 허비했다(33:9,11 참조).
③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뒤에 야곱의 일생이 확 뒤집어지는 극적인 반전이 일어난다. 그것은 바로 ‘얍복 나루 씨름사건’ 이다.
얍복 나루 씨름사건 (24~29절)
①
② 야곱과 씨름을 하는 ‘어떤 사람’은 28절과 30절에서 보는대로 ‘하나님’ 이심은 분명하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그 한 밤중에 가족과 모든 소유를 건너가게 하셨고, 그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와 씨름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26절을 유추해 보면, 절박한 야곱이 하나님께 먼저 문제를 해결해 주시라고 너무나 간절히 그리고 강력하게 구하는 것이 씨름으로 까지 발전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③ 어쨌든 야곱이 곧 있을지도 모를 아니 가능성이 농후한 형의 복수를 앞에 두고 하나님께 씨름 자세로 달라붙어 ‘축복’을 요구한다. 즉 야곱이 요구한 복은 400명을 거느리고 달려오는 형의 손길에서 벗어나는 복을 의미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엉뚱하게도, ‘야곱’이라는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시는 복을 주신다. 야곱의 상상을 초월하는 복,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허를 찌르는 복을 주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더불어 겨룬자’ ‘하나님과 겨루어 이김’ 등의 뜻이다.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장차 이스라엘 백성은 이 이름에 걸맞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었다. 일단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으니, 에서(Esau)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겠고 야곱의 당면한 문제는 해결된 것이다. 다른 면으로 본다면 환도뼈까지 위골되어 쩔뚝거리는 모습으로 잔머리 굴리며 도망갈 궁리를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퇴로는 없다! 그는 이제 죽든 살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하는 것이다.
④ 그런데 ‘이스라엘’로의 개명사건은 야곱의 인생이 바뀌는 사건이 되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언약(큰 나라를 이루시리라는 언약)이 일부 성취되는 사건이 되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나라’를 세우시려는 것이다. 한 국가가 세워지려면 3요소가 필요하다. 그것은 주권 영토 국민(백성)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라는 국명을 주심으로 주권을 세워주신다. 이름없는 국가는 없다! 영토는 ‘가나안’이고 백성은 ‘야곱의 12아들들로 시작되는 후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그들에게 말씀하실 때, “야곱의 후손들아 12지파의 자손들아 들으라” 이렇게 하시지 않고 “이스라엘아 들으라” 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언약의 2단계(이스라엘 성립~출애굽까지)는 시작되고 있다.
⑤ 바로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 사건 이후로 야곱은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⑥ 이 사건이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져 주시는 것이라는 의미라고 생각된다. 25절을 보자.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허벅지 관절-개역개정)를 치매… 위골되었더라(어긋났더라-개역개정)’ 어딘가 표현이 어색하다. 못 이기는데, 뼈를 치니 어긋났다? 조금 세게 치시면 죽을 수도 있겠군요.^^ 우리가 오래 기도를 하다보면 예를들어 무릎 관절이 고장날지언정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에 져 주시고 응답해 주신다.
⑦ 한 가지만 더 살펴보자. 29절에 보면 야곱이 ‘어떤 사람’의 이름을 묻는다. 해석에 따라 이 ‘어떤 사람’을 성육신 전의 성자 하나님 또는 하나님의 사자 등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야곱의 질문에 그 분은 대답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겨루어 주신 것만으로도 놀라운 사건이니, 우리도 구체적으로 이름까지 알려하지 말라는 뜻이 아닐까? 18장에 나타나신 ‘그 분’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 사람이 야곱의 환도뼈 큰 힘줄을 친고로… (32절)
① 개역개정-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② NLT- That is why even today the people of
[문제32-1] 다음 중 틀린 것을 고르세요.
①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나고 나서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고 했다.
② 야곱이 돌아올 당시 형 에서는 세일 땅 에돔 들에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③ 야곱의 전갈을 가지고 간 심부름꾼들은 에서(Esau)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④ 형이 400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야곱은 심히 두려워하고 답답해 했다.
⑤ 야곱은 에서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종자(從者)와 짐승을 두 떼로 나눴다.
[문제32-2] 야곱이 하나님께 간구한 내용이 아닌 것은?
① 주께서 내게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②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옵소서.
③ 에서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납니다.
④ 주께서 네 씨로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⑤ 나는 주께서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넉넉히 받았나이다.
[문제32-3] 다음 중 맞지 않는 것을 고르세요.
① ‘얍복’은 요단강의 지류이다.
② 야곱은 550마리의 가축 선물을 준비했다.
③ 야곱의 선물 떼를 여럿으로 나누고 각각 거리를 두었다.
④ 야곱은 준비한 예물로 형의 감정이 풀리기를 바랬다.
⑤ 야곱은 밤에 일어나 얍복 나루로 모든 가족과 모든 소유를 건넸다.
[문제32-4] 얍복 나루 씨름 사건과 다른 내용은?
① 야곱은 씨름 후 ‘이스라엘’이라는 복을 받은 장소를 ‘브니엘’이라고 불렀다.
②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 이란 뜻이다.
③ 야곱이 씨름 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셨다.
④ 그 사람이 야곱의 환도뼈를 쳤기에 그의 허벅지 관절 부분이 부러졌다.
⑤ 그가 ‘브니엘’ 즉 ‘얍복 나루’를 건널 때 이미 해가 떴다.
암송 구절
2절
9~12절
24~28절
30절
정답
[문제32-1] ③
[문제32-2] ⑤
[문제32-3] ②
[문제32-4] ④
적용
㉮ 형이 군사를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야곱은 심히 두려워하고 답답해 했다. 그는 사실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왜 두려워했다고 생각되는가?
㉯ 야곱은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기 보다는, 형에게 과분한 선물을 준비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입장에서 보면 재산을 낭비했다고 생각된다. 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뀐 사건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시는지 보여주시는 큰 사건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져 주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Copyright © 2009 by Paul 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