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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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이제 본격적으로 야곱의 자식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라헬의 질투로 인해 빌하도 야곱의 자손을 생산하게 되고, 레아의 시녀 실바와 레아 자신을 통해서도 자녀들이 계속 태어난다. 라헬을 기억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도 요셉을 주신다. 이제 야곱의 귀향 시간표는 점점 더 임박해오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야곱은 심히 부유해진다.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1절)
① 라헬의 아버지 라반이 한 남자에게 두 딸을 같이 아내로 줬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긴 했지만, 이제 두 자매 아니 두 여자의 질투를 동반한 힘겨루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② 어찌보면 라헬은 피해자라고 볼 수도 있겠다. 언니 레아만 없었다면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편하게 가정을 꾸릴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자신에게 사랑에 눈 멀어버린 야곱을 언니에게 먼저 새치기 당해서 뺏겼고, 남편이 사랑하지도 않는 언니는 아들을 넷 씩이나 낳았으니 라헬의 심정이 오죽했겠는가… 부러움이 섞인 질투에 자신도 아들을 가져야한다는 조급함 등이 뒤섞인 심정이 라헬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③ 우리가 지금까지 읽고 묵상하고 연구한 방식대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살펴야 할 것이다. 레아와 라헬 자매가 목하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27장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시계가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의 일평생을 통해 오랜기간 꾸준히 쓰시기도 하시지만, 오랜기간 훈련시키신 후에 ‘짧고 굵게’ 쓰시는 것 같다. 야곱이 147년을 살았지만 아버지 축복사건부터 하란에서의 이 20년 생활이 가장 치열하고 분주한 그래서 이스라엘 12지파 즉 ‘여호와의 백성’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야곱 인생의 (고달픈) 황금기가 되는 것이다. 즉 아브라함을 가나안으로 부르시고 이삭과 야곱을 거쳐 예정된 민족의 시초가 성립되기까지 언약의 1단계가 완성되는 시기가 되는 것이다.
④ 남편에게 사랑받지는 못하지만 레아의 태를 여셨고, 사랑은 받았지만 태가 닫힌 라헬을 격동시켜 두 시녀까지 참가한 아들낳기 경쟁이 벌어지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결과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20년이라는 기간을 정해 놓으시고 그 시간표에 맞추셔서 일을 진행하신 것이다.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1절)
① 영문성경은 공히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를 ‘Give me children’ (자녀를 달라) 으로 표현하였다. 이것은 마치 야곱이 자신에게 아이를 주지 않고 있다는 의미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그래서 바로 뒤의 2절에서 “라헬에게 노를 발하여 가로되” 라는 야곱의 반격을 유발하고 있다.
② 이 부분은 인간의 사랑이란 것이 어찌보면 부질없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7년을 수 일 같이 여기며 기다린 사랑스런 ‘라헬’의 투정 한마디에 불같이 화를 내는 야곱의 모습에서 우리 인간이 얼마나 부족하고 별 볼일 없는 존재들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야곱도 별 수 없는 인간이었구만! 하고 위로를 받자.^^
③ 앞 장에서도 보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한 레아를 ‘보시고’ 그녀의 태를 여셨다고 했다. 반면에 레아보다 더 행복했을 것 같고 더 행복했어야만 할 라헬은 ‘죽게 될’ 정도로 힘들어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행복의 기준이나 조건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이것이 문제로다. 사람의 기준인가 하나님의 기준인가? 지금 행복한 것 같아도 그게 다가 아닐 수가 있음을 우리는 라헬에게서 catch 할 수 있어야겠다.
그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첩으로 주매 (4절)
① 라헬이 야곱의 노를 격발하게 하고 자신에 대한 애정을 고의로 식게 한 후에 하녀 ‘빌하’를 통해 아들을 가지려 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어쨌든 야곱은 빌하를 취한다.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도 그랬고 야곱도 그렇게 한 것에서 인간의 약한 모습을 깨닫게 된다.
② 적어도 야곱만큼은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봐서 그녀가 권했더라도 “그게 무신 소리야” 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를 못했다.
③ 우리는 지금까지 보아 온 대로 하나님의 기준에서 본다면 이미 예상한대로 이 일 조차도 하나님의 섭리하에 진행되는 일임을 인정하게 된다.
빌하가 낳은 아들들 (5~8절)
① 단 : ‘억울함을 푸심’ 이라는 뜻이다. 아버지와 언니의 속임수에 당하고 사랑은커녕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야곱을 향해 쌓였던 억울함이 풀렸음을 말해준다.
② 납달리 : ‘경쟁함’ 이라는 뜻이다. 언니는 넷을 낳았지만 나도 이 정도면 언니를 이겼다고 생각했나 보다.
실바가 낳은 아들들 (9~13절)
① 갓 : ‘복됨’ 이라는 뜻이다.
② 아셀 : ‘기쁨’ 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두 아들을 더 얻은 레아의 여유만만함을 엿볼 수 있다.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14절)
① 합환채(mandrake)는 고대부터 불임 여성을 위한 최음제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사람의 형상을 닮은 합환채의 뿌리를 보고 신비한 힘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합환채는 초여름에 노란색 열매를 맺는데, 열매의 강력하고 달콤한 향기는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퍼진다고 한다.(열린다 성경 식물이야기, 류모세 著, 두란노 刊, 225p)
② 벌써 맏아들 르우벤이 많이 컸나보다.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어머니의 고충을 생각하고 귀한 것을 구해다 드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라헬은 여전히 자기와 한 이불을 덮고 사는 남편에게 미안했는지 언니의 합환채를 달라고 한다. 하룻밤 남편을 양보하더라도 그것만은 손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음직하다.
③ 많은 아들들을 안겼음에도 불구하고 레아에게 남편은 여전히 ‘남의 편’ 이었다. 라헬의 치맛폭에만 싸여 있어 야곱을 빼앗긴 기분으로 살던 레아는 합환채마저 요구하는 동생에게 불만을 터뜨린다. 그러나 동생의 솔깃한 제안에 응하게 되고 그 밤 야곱을 차지하게 된다. 늙은 야곱! 참 힘들겠다.
하나님이 레아를 들으셨으므로 (17절)
① KJV ‘God hearkened unto Leah’ (하나님께서 레아를 경청하셨으므로) NIV ‘God listened to Leah’ (레아를 들으셨으므로) NLT ‘God answered her prayers’ (그녀의 기도에 응답하셨으므로) NASB ‘God gave heed to Leah’ (레아에게 주의를 기울이셨으므로)
② 결국 하나님께서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레아를 처음에는 ‘보시고’ 나중에는 그녀의 간구를 ‘들으셨다’.
레아가 낳은 아들들과 딸 (18~21절)
① 잇사갈 : ‘값’ 이라는 뜻이다. 하녀 실바를 남편에게 주었더니 하나님께서 그 값을 주셨다고 생각했나 보다.
② 스불론 : ‘거함’(dwelling) 이라는 뜻이다. 여섯 명의 아들들을 낳았으니 이제 남편이 자신과 거해 주기를 원했다.
③ 디나 : 레아가 마지막으로 낳은 딸이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22절)
① ‘생각하신’은 ‘기억하신’의 뜻이다. 즉 오랫동안 신경을 안 쓰셔서 잊혀진 것 같은 라헬을 이제 기억하셨다는 의미다. 물론 하나님께서 잊으셨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그 정도로 오랜만에 하나님께서는 라헬에게 은혜를 베푸셨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② 대기만성이라 했던가. 라헬의 부끄러움을 일순간에 날려버릴 ‘요셉’이 드디어 태어나게 된다. 창세기의 뒷부분을 요셉의 이야기가 상당부분 차지하는 것으로 봐서 그의 비중을 알 수 있다.
③ 요셉의 이름 뜻은 ‘더함’ 이다. 얼마나 눈 빠지게 기다린 아들이었으면 다른 아들을 더 주시라는 의미의 이름을 지었을까!
라헬이 요셉을 낳은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25절)
① 31:38과 관련하여 야곱이 요셉을 낳은 후 즉시 고향으로 돌아간 것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27~29장 등에서 본 바와 같이 야곱이 바로 왕 앞에 섰을 때의 나이 130세를 기준으로 여러 사건들이 일어난 때를 추정했다. 앞에서는 편의상 요셉을 낳은 후 고향으로 돌아 간 것으로 봤고 그 햇수를 20년으로 가정했었다. 야곱이 라반과의 마지막 협상으로 양과 염소를 치면서 자신의 재산을 정리하는 기간은 요셉을 낳은 후 20년을 채우는 때까지 이므로 그 기간은 1~2년 정도로 추측된다.
② 레아 빌하 실바 레아 라헬 순으로 돌아가며 아들들을 낳았으므로 단순히 추측해 본다면, 야곱의 하란 거주 8년차부터 매년 아들이 한 명씩 추가되었다고 하겠다. 이렇게 계산하면 요셉은 자기 아버지 야곱이 하란에 거한지 18~19년 쯤 태어났다고 하겠다. 물론 레아와 빌하가, 빌하와 실바가 동시에 임신하는 경우등이 가능하므로 형제들간의 나이차는 줄어들고 요셉을 낳은 시기는 빨라질 수 있다. 그러나 성경본문을 통한 추정이 쉽지 않으므로 단순화한다.
③ 이렇게 되면 27장에서 설명한 이삭 축복사건 당시의 이삭의 나이등이 다음과 같이 변경된다.
27장 축복사건 당시의 이삭의 나이 132세쯤
야곱의 나이 72세쯤
밧단아람을 떠날 당시의 야곱의 나이 92세쯤
요셉이 총리대신에 올랐을 때 야곱의 나이 120세쯤
야곱이 바로왕 앞에 섰을 때의 나이 130세(주)
(주) 7년 풍년+ 2년 째 흉년+ 1년은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게 되면 햇수가 바뀌는 것으로 계산.
※ 야곱이 파라오 앞에 섰을 때의 나이가 130세였고, 그때 요셉의 나이를 39세라고 본다면 야곱과 요셉의 나이 차는 91세가 된다. 야곱이 91세 되었을 때 요셉이 태어났고, 야곱이 72세 쯤에 밧단아람에 도착했다면 그곳 생활 말년에 요셉이 태어났다고 보는 게 맞게 된다.
※ 이렇게 굳이 숫자를 넣어 설명을 하는 것은, 될 수 있는대로 성경을 더 real하게 읽고 기억하기 쉽도록 하려는 의도이며, 약간의 햇수(년수) 차이가 발생하더라도 성경의 본문엔 전혀 변형(손상)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예를들어 야곱이 70세 경(70세였건 72세였건 상관없이)에 부모를 떠나 하란으로 갔다는 사실은 이런 방식으로 성경을 연구할 때 얻을 수 있는 유익일 수 있다.
④ 이제 야곱은 요셉이 태어난 직후에 장인이자 외삼촌인 라반에게 처자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가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27절)
① 아브라함의 손자요 이삭의 아들인 ‘야곱’이 복의 근원인 것을 라반이 지금 알게 된 것은 아닐텐데 조카라고 너무 막 다뤘나 보다. 그래도 자신의 딸들과 한 가정을 꾸린 사위가 되기도 하는데 말이다.
② ‘사랑스럽게 여기거든’은 ‘기쁘게(좋게) 여기거든’의 의미이다. 라반은 계속 야곱을 붙잡아 두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치사한 사람^^ 처음부터 잘 좀 하지…
③ 다급해진 라반은 품 삯을 정하라고 이제야 얘기한다. 그동안 공짜로 부려먹었다는 얘기 아닌가. 야곱은 29~30절에서 그 동안의 섭섭함을 토로한다.
나는 어느 때에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30절)
① 야곱은 지금 두 명의 본처와 두 명의 소실을 두고 12명의 자녀를 거느린 대가족의 가장 아니던가? 그는 현재 자신이 일 한 만큼 소유하고 처분할 수 있는, 즉 독립적인 경제권을 가지지 못한 처지였던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야곱이 이 말을 할 때까지 아무런 재산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조금씩이지만 그는 재산을 축적해 가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가난했던 라반이 자신의 도움으로 부유하게 됐지만 여전히 야곱 자신은 라반에게 예속되어 일 한만큼 제대로 품 값도 못받고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하소연하는 것이다. '내 집 좀 세우게 해 주세요!' 경제적인 독립이 되지 않으면 한 가정이 세워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古代의 야곱은 대단한 경제사상가였나 보다. 이는 現代에도 통용되는 이론 아닌가!
② 이것은 십일조가 교회를 세우는 요소가 된다는 28장의 해석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아무것도 내게 주실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시면 (31절)
양 중에 아롱진 자와 점 있는 자와 검은 자를 가리어 내며 (32절)
자기 아들들의 손에 붙이고 (35절)
① 양 몇마리 염소 몇마리 나눠준들 그게 단기간에 야곱에게 큰 도움이 되겠는가. 이제 그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시간표는 야곱이 귀향할 시간이 다 되었던 것이다.
② 하나님께서 주신 야곱의 이 아이디어는 20년간 들판에서 목동생활을 하며 터득한 놀라운 방법이었던 것이다. 천하의 꾀돌이 야곱이라도 2~3년만 양을 쳤다면 아마도 이런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받을만한 자에게 주시는 것이지 준비도 안 된 자에게 주시지는 않으시는 것이다. 감당할 수가 없기에…
③ 이제 야곱은 나이도 구십 세나 되었고 속기도 하며 인생의 연륜이 쌓였기에 아버지를 속이던 그런 야비한 야곱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 하나님의 법과 인생의 법을 지키며 살 것이었다. 31:38~41에 의하면 죽도록 고생한 야곱의 받을 것을 10번이나 변역(change)한 라반에게 하나님께서 이 방법(37~42절)을 쓰게 하신 것이다.
④ 재미있는 것은 35절 끝부분의 ‘자기 아들들의 손에 붙이고’ 이다. 라반은 자기 손으로 얼룩무늬 점박이 아롱이 검은 자를 골라내어 3일 길 거리를 이격하여 자기의 아들들로 지키게 한 것이다. 물론 자신의 양은 야곱에게 지키게 하였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신 것이다.
⑤ 야곱의 짐승으로 된 것은 어떠한 것들이었나? 아롱진 양, 점 있는 양, 검은 양, 얼룩무늬 있는(=아롱진) 염소, 점 있는 염소가 그것들이다.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취하여 (37절)
① 야곱이 오랜 시간 양을 치면서 터득했음직한 이 방법만으로 그의 소유가 43절에서와 같이 많아졌다고 보기는 어렵겠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 야곱을 속이고 힘들게 한 라반을 징계하시는 차원에서, 야곱의 표현대로 ‘하나님이 짐승을 빼앗아’ 그에게 주셨다(31:9).
② 어쨌든 재밌기도 하고 일면 비수의학적(?)인 것 같기도 한 아이디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심히 번성케 하셨다.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 사람이 심히 풍부하여 (43절)
① 하나님께서는 왜 야곱의 하란 생활 말년에 부어주셨나?
② 그의 아버지 이삭은 아직 살아 있고, 고향으로 돌아가면 상속자로서 모든 것을 물려받게 될텐데 말이다.
③ 그냥 물려받기만 하는 것은 양(量)의 많고 적음을 떠나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으로부터 모든 것을 물려받았지만 그 자신도 하나님으로부터 큰 복을 받았다(26:12~14). 야곱도 마찬가지이다.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받은 27:27~29의 축복을 받아야 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소극적으로 물려받는 것에 한정하지 않으시고 적극적으로, 예비된 복을 주신다.
야곱의 자녀들 정리
1남 르우벤(레아) 2남 시므온(레아) 3남 레위(레아)
4남 유다(레아) 5남 단(빌하) 6남 납달리(빌하)
7남 갓(실바) 8남 아셀(실바) 9남 잇사갈(레아)
10남 스불론(레아) 1녀 디나(레아) 11남 요셉(라헬)
12남 베냐민(라헬)
왜 야곱의 자녀들 이름을 레아와 라헬이 모두 지었을까?
① 에서와 야곱의 이름은 이삭이 지었는지 부모가 합의해서 지었는지 확실치 않다. 그러나 야곱의 12자녀의 이름은 몽땅 레아와 라헬이 지었음을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야곱은 여기에 끼어들 여지가 없던 것일까?
② 총론(總論)은 야곱이 맞다. 조부 아브라함 때부터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후손의 복은 야곱으로 인하여 주어질 것이었다. 그러나 각론(各論)은 레아와 라헬이다. 레아와 라헬의 하녀인 실바와 빌하가 제외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두 여자의 지지고 볶는 시간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자녀들의 이름에 두 자매의 희로애락이 아로새겨져 있는 것이다. 야곱이 여자들 치맛폭에 싸여 눈치도 보고 정신을 못차린 면도 있었겠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 사료된다.
[문제30-1] 다음 중 틀린 것을 고르세요.
① 야곱은 자신 앞에서 투기하는 라헬을 향하여 노를 터뜨렸다.
② 라헬의 하녀 빌하는 ‘단’과 ‘납달리’를 낳았다.
③ 레아 자신이 낳은 다섯번째 아들은 ‘잇사갈’이다.
④ ‘납달리’의 뜻은 ‘경쟁함’이다.
⑤ 레아는 세상의 모든 자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할 것이다 하면서 실바가 낳은 아들을 ‘아셀’이라 하였다.
[문제30-2] 다음 중 틀린 것을 고르세요.
① 르우벤은 추수 때 들에 나가 합환채(맨드레익)를 구해 어머니 레아에게 드렸다.
② ‘요셉’의 이름 뜻은 ‘부끄러움을 씻음’ 이다.
③ 레아와 라헬은 합환채를 가지고 거래를 하였다.
④ 레아는 합환채로 인해 ‘잇사갈’을 낳게 되었다.
⑤ 하나님께서 라헬을 생각하시고(remember) ‘요셉’을 주셨다.
[문제30-3] 다음 중 맞는 것을 고르세요.
① 라반은 야곱의 노력으로 인해 자신이 부자가 되었음을 인정했다.
② 야곱이 라반의 집에 왔을 때 라반의 소유는 많지 않았다.
③ 야곱은 아롱진 양 등을 선별하여 라반의 아들들에게 맡겼다.
④ 야곱은 양과 소 남녀노비 낙타 나귀가 많아졌지만, 염소는 아니었다.
⑤ 야곱은 버드나무 살구나무 신풍나무의 알록달록한 가지를 벗겨 흰 무늬를 냈다.
암송 구절
22~24절
25절
43절
정답
[문제30-1] ⑤
[문제30-2] ②
[문제30-3] ②
적용
㉮ 라반은 평소에 야곱을 소홀히 대하다가 이제 그를 잃게 생겼다. 그의 뒷수습이 바쁘다. 당신도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혹시 당신?
㉯ 야곱은 들판에서 20년간 양떼를 지키며 고생했기에, 말년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 또한 그의 목축 경험이 가나안과 후일 애굽에서 유용하게 자식들에게 전수되었을 것이다. 지금의 고생이 후일 큰 유익이 될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가?
㉰ 하나님께서는 소극적으로 복을 주시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주신다고 생각된다. 그것을 인정한다면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있는가?
Copyright © 2009 by Paul 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