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2:44~50
외치시고 이르시다(cried and said)
44.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45.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46.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47.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48.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49.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50.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우리는 살면서 후회하는 상황을 종종 마주하게 됩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난 뒤에 돌이켜보니 차라리 그 때 그 말은 안 하느니만 못했다 라고 생각하게 될 때입니다. 우리는 정말 말을 좀 조심하면서 살지 못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말을 왜 조심해야 하느냐 하면, 우리 입술을 떠난 말은 엎질러진 물처럼 주어담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듯이, 지나치게 말하고 허풍을 떨며 사느니, 그냥 나 죽었소 하면서 조용히 사는 게 차라리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좋을 것입니다.
말을 너무 많이 하면 자기도 모르게 허물이 튀어나오고 실수를 하게 됩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했듯이 허풍을 떠는 사람도 지혜가 없거나 가진 게 없는 빈 깡통 같은 사람일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곳곳에 입술을 지키라는 말씀이 들어있다고 생각됩니다(잠13;3 등). 자기 입술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사람입니다. 또한 그런 사람이 남도 지켜줄 수 있는 믿을만한 사람입니다.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잠20:19).
반면에 시의적절하고 꼭 필요한 말을 함으로써 사람을 살리고 천 냥 빚을 갚기도 합니다. 교만한 말이나 허풍이 가득한 말이나 미움이 들어간 말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주님께 받은 말씀을 우리 입으로 전한다면 그 말씀은 설령 죽어가는 사람이라도 살릴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아주 어린 시절을 지나서 좌우를 분별할 줄 알게 되었을 때부터 하기 시작한 말들은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뇌리와 마음에 남아있고, 하나님 앞에도 전부 다 남아있고 다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두 군데를 보겠습니다.
먼저 마12:35~37입니다.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다음은 눅12:3~5입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사람의 말도 영향력이 있고 그냥 없어지거나 하지 않는데, 하물며 우리 주님이 하신 말씀은 어떠하겠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신 대로 이 땅에 오셨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행하실 것이라고 예언된 대로 행하셨습니다. 사42:2입니다.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따르는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셨지만, 누가 그랬는지/ 주님이 그렇게 하신 것을 드러내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마12:16 등).
그런 주님께서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정반대로 행하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외치며 말씀하셨습니다. 외친다(cry out)는 것은 “부르짖다” “큰 소리로 말하다”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그 시대의 사람과 세상과 오늘의 우리를 향해 외치셨습니다. 이렇게 외치셔야 할 정도로 중요하거나, 나중에 그 누구라도 딴소리하지 못하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세상을 향해 외치신 말씀은,
1.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다(44절)
우리는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보거나 들을 때, 주님의 의도를 잘 파악해야 합니다. 여기서는 일종의 반어법을 쓰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44절을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바꿔보겠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만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도 믿는 것이다’ 물론 주님께서는 사실 이런 의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44절처럼 말씀하심으로써 주님께서는 너희가 누구를 믿고 있는지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강조하고 계십니다. 나를 믿는다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믿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이에 더하여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자의가 아니라 그를 보내신 분이 있음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주님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입을 막고 계시는 것입니다. 요즘 소위 입틀막이라고 하면서 조소적 내지는 부정적인 의미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입틀막은 필요한 것입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입을 벌려 소리지르는 것이 항상 옳은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2.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다(45절)
여호와 하나님을 대면하여 뵈었던 모세는 사람을 보듯이 하나님을 뵌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옆에 있는 사람과 대화하듯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모세를 대면해주셨습니다. 소위 ‘말씀 대면’이었습니다. 출33:18~23입니다.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셔서 이 땅에 오신 일은 놀랍고도 복된 일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된 것에 더하여 하나님을 직접 뵐 수 있는 은혜까지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별로 찬성을 안 하지만, 곳곳에서 예수님의 초상화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45절을 말씀하신 진정한 의미는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이신 것과 아들을 통하지 않으면 누구도 아버지께로 갈 수 없음을 말씀하시려는 것입니다. 요14:6~10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3.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다(46절)
이스라엘 자손의 출애굽 시에 있었던 열 가지 재앙 중에 아홉 번째는 흑암 재앙이었습니다. 애굽 온 땅에는 3일 동안 볼 수도 없고 꼼짝도 못할 흑암이 있었고, 이스라엘 자손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습니다(출10:22~23).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빛이 있는 곳에 거하는 사람이고, 그렇지 않으면 어둠의 땅 애굽 땅에 거하는 인생이 됩니다.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빛으로 오셨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요1:9). 오늘 본문 바로 앞의 35~36a절에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렇습니다. 빛을 받고 빛에 거하는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어둠 속에 거하며 헤매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가고 있는 길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빛에 거하는 우리는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들 바로 옆에 죽음의 구덩이가 있어도 어둠 때문에 볼 수가 없습니다. 어둠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어둠에 거하는 여러분 주변의 가까운 10명을 목표로 해서, 빛 되신 주님 앞으로 인도하시길 축복합니다.
4.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다(47절)
초림하신 주님은 심판 주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구원 주로 오셨습니다.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그렇지만 이 말씀도 역시 심판이 없다거나 끝까지 하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이 아니라는 걸 아실 것입니다.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저와 여러분을 살려주러 오신 주님이시기에 먼저 구원을 주시러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오시는 주님은 심판 주로 오십니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1:7). 초림은 구원, 재림은 심판입니다.
혹시라도 지옥이 없다거나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뜨거운 불구덩이로 보내실 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말하는 자들은 사탄의 조종을 받는 자들입니다. 사탄의 특기 아시잖아요? 반드시 죽으리라(100%)(하나님) --> 죽을까 하노라(50%)(사탄의 꾐에 빠진 인간) -->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0%)(사탄) --> 다 죽게 됨(100%)(하나님 말씀대로)
지금은 내 맘대로 어떻게 살아도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 말씀을 들었지만/듣기만 하고 지키지 않으면서 내 멋대로 살면 안 됩니다. 주님께서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라고 하신 말씀에 꼭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시대 듣기만 하고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우리의 고질병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다시 오시면 그 책임을 우리 각자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5.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48절)
처음 오신 주님은 심판하러 오지 않으셨다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이 다시 오시기 전까지 사람들에게 시간과 기회를 넉넉히(?) 주신 것입니다. 누구도 핑계치 못할 시간을 주셨습니다. 물론 먼저 믿은 우리도 열심히 그리고 신속히 주님의 십자가를 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주님을 ‘저버린다’는 것은 “reject” 거부한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거부하고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를 심판할 이(a judge 재판관)가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날에 심판할 이는 주님이 하신 말씀이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이런 등식이 성립할 수 있을까요? 심판할 이는 예수님이라고 해야 맞지 않겠습니까? ‘예수님 = 예수님 말씀’이라서 그럴까요? 이에 대한 해답을 주님께서 직접 알려주고 계십니다.
6.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다(49~50절)
우리는 요1:1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라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이 요1:1의 의미와 마지막 날에 심판할 이가 예수님 말씀인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서 하신 모든 말씀은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해 주신 명령이 “영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주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말씀을 그대로 우리에게 전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그 말씀이 영생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우리는 영생을 소유한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심판할 이 = 주님이 하신 말씀,
주님이 하신 말씀 =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명령,
명령을 내리신 분 = 하나님 아버지,
심판할 이 = 하나님 아버지
그러므로 요1:1에서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등식도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제 정리하고 마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외치시고 이르신 말씀을 꼭 기억하시길 축복합니다. 주님께서 재림 주와 심판 주로 다시 오실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날이 오면 후회해도 늦습니다. 미리미리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영생이 무엇인지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해 주신 명령대로 순종하며 살면 영생입니다.
잘 준비하여 다시 오실 주님을 기쁨으로 기다리는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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