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11:1~6, 31~34
원망과 욕심(탐욕)의 끝은?
1.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
2.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
3.그 곳 이름을 다베라라 불렀으니 이는 여호와의 불이 그들 중에 붙은 까닭이었더라
4.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5.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6.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31.바람이 여호와에게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곁 이쪽 저쪽 곧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
32.백성이 일어나 그 날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진영 사면에 펴 두었더라
33.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34.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의 입장에서는 성도들이 듣기 거북해할 것 같은 메시지는 될 수 있는 대로 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하나님 명령대로 살아서 잘 된 이야기보다는, 그 반대의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옴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위대함이기도 합니다. 세상 종교의 경전은 훈계는 있되, 좋은 얘기만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브라함, 모세, 다윗 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의 좋은 점이나 장점뿐만 아니라 실패하고 실수한 이야기도 가감 없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그가 골리앗을 물리친 이야기도 나오지만, 충신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은 파렴치하고 창피한 이야기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다윗의 잘못조차도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크게 성공한 사람들을 조사해보면 그들이 성공하기 전에 철저한 실패를 여러 번 겪었다고 합니다. 실패가 성공의 밑거름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실패를 두려워해서 어떤 일에 도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성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론 머스크의 우주기업 스페이스 X도 3번 실패 후 4번 만에 우주 왕복선이 지구로 무사히 귀환했다고 합니다. 일론 머스크는 3번째 실패했을 때도 오히려 기뻐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실패 이면에 있는 성공이 보였기 때문이었겠지요. 실패를 통해 성공으로 가는 데이터를 차곡차곡 쌓아나갔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말씀을 반면교사로 삼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직접 실제로 실패를 경험할 필요도 이유도 없습니다. 성경에 그 과정과 결과가 다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직접 성경 인물들의 실패를 경험해보겠다고 한다면 그 자체가 또 다른 심각한 범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통해 인생의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 시대에 믿는 자로서 손가락질을 받는 것은 바로 우리 주님과 주님의 십자가를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민수기 11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저지른 두 가지 범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다베라”이고 다른 하나는 “기브롯 핫다아와”입니다. 둘 다 이스라엘 자손이 범죄한 일을 따라 붙여진 지명입니다만, ‘다베라 사건’과 ‘기브롯 핫다아와 사건’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다.
오늘 첫 사건은 “다베라”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1절은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을 하게 된 이유나 전후 상황 등을 알려주지 않고 있습니다. 단지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악한 원망을 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이유에서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모든 원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모든 원망은 악한 원망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악한 원망을 들으셨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 종살이에서 자신들을 건져주신 일만 생각해도 감사 밖에 여호와의 귀에 들려드릴 게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았기에 오로지 감사와 찬양만 올려 드릴 뿐입니다.
짐승도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을 알아봅니다.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원망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악한 원망을 들으시고 진노하셨습니다. 우리도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나쁘고 조금 더하면 화도 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의 악한 원망을 들으시고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고 가까이 계셨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의 말씀을 보면, 여호와의 언약궤가 이스라엘 자손보다 앞서 가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다고 했는데(10:33),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계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설령 멀리 계셔도 그들의 소리를 들으실 텐데-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종살이하는 중에 부르짖는 것을 들으셨다(출3:7)-, 가까이 계시다면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1b절입니다.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
여호와께서 보내시는 불은 낮엔 구름 기둥이요 밤엔 불 기둥처럼 지키고 보호하시는 불도 되지만, 진노하셔서 태워 없애시는 불도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히12:29).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 여호와의 불이 진영 끝을 사르게 하셨다는 점입니다. 그 불을 중심부로 보내셨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 정신을 차렸을 텐데 말입니다. 아마도 이것은 ‘원망의 변두리 효과’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봅니다. 교회 내에서도 원망과 불평은 주로 변두리에서 음성적으로 시작되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이런 사소하고 작은 원망과 불평은 누룩처럼 전체로 퍼져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스라엘 진영 끝에서 이 악한 원망이 시작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불이 거기서 시작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변두리에서 방황하지 마시고, 중앙으로 앞으로 나아오시길 축복합니다. 미국의 유력 대통령 후보와의 식사 모임이 있는데, 그와 가까운 자리에 앉으려면 매우 큰 금액의 정치후원금을 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 나오는 데는 그런 차별이 없습니다. 마음과 정성만 있으면 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73:28a).
그런데 여호와의 불은 사람이 끌 수 없는 불입니다. 2절입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이 많은 아버지가 자녀를 훈계하고 때로는 회초리를 드는 것처럼, 우리가 잘못하면 징계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베라”의 의미는 ‘불사름’입니다. 다베라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악한 원망에서 비롯되었음을 꼭 기억하시길 소망합니다. 원망의 자리에서 감사의 자리로, 변두리에서 중심부로, 뒤에서 앞으로 나아오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두 번째 사건은 “기브롯 핫다아와”입니다. “탐욕의 무덤”이란 뜻입니다. 오늘 두 사건은 모두 이스라엘이 출애굽하고 둘째 해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 년 동안 만나를 먹고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광야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먹었다는 게 기적인데, 기적도 계속되니 시큰둥해진 모양입니다.
그런 그들에게서 불평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4절입니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출애굽 시에 함께 나온 다른 민족 사람들이 있었는데, 탐욕은 그들에게서 시작되어 전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로 퍼져나갔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얼마나 고기를 먹고 싶었으면 울었을까 궁금해집니다.
출애굽기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처음 주셨을 때 메추라기 고기도 주셨습니다(출16:12). 그러나 메추라기를 만나처럼 매일 주신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상당 기간 고기를 먹지 못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스라엘 자손이 하고 있는 불평에 있었습니다. 5~6절을 합독하겠습니다.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5절에 “값없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값없이 먹은 거 맞습니까? 돈은 안 낸 것 맞지만, 노예가 돈 내고 밥 먹는 거 보셨습니까? 그래서 사실은 값없이 먹은 것은 아닙니다. 종살이로써 밥값을 치른 것입니다. 오히려 광야 길을 걷고 있는 지금 값없이 먹고 있는 것입니다.
말을 타면 종을 부리고 싶어진다고 했듯이, 광야에서 만나라도 먹게 된 걸 감사하지는 못하고 애굽에서 먹던 음식을 기억하며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각자 자기 장막 문에서 우는 것을 모세가 듣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여호와의 진노가 심히 컸고 모세도 기뻐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홍해를 마른 땅으로 건넌 모세였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번 일은 모세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온 모양입니다. 오늘 교독한 본문 사이에 있는 13~15절입니다.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이르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70명의 장로를 모으게 하셨고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셔서 그의 짐을 덜어주시고 위로해주셨습니다. 할렐루야! 또한 백성에게 그들의 몸을 거룩히 하여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으로 그 일을 이루실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18c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멸시한 댓가로, 고기 냄새도 싫어질 때까지 한 달 동안 고기를 먹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뜻밖에 지도자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말았습니다(21~22절). 제아무리 유능한 지도자라 할지라도 지치고 힘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목하 모세가 그런 때가 아니었을까 짐작이 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친근하고 자상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2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운행 질서대로 작동이게 하셨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직접 피조 세계를 움직이십니다. 31a절입니다. “바람이 여호와에게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이스라엘 백성이 장막을 친 사방으로 하룻길 거리에 약 1미터 두께로 메추라기가 쌓였습니다. 그들이 만 이틀 동안 거둬들인 메추라기의 양은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적게 거둔 자가 10호멜이라고 했는데, 쉽게 설명을 하면 석유 드럼통(2백 리터)으로 11드럼통 분량입니다.
33~34절을 합독하겠습니다.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만나를 먹었을 때는 살았지만, 탐욕의 고기를 먹고 나서는 죽게 되었습니다. 탐욕의 끝은 사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것에 만족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욕심이나 탐욕으로 구하면 받을 수도 있지만, 그 끝은 좋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고 마치겠습니다.
“다베라”와 “기브롯 핫다아와”의 교훈을 반면교사로 삼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원망과 불평의 변두리에서 탈출하여 앞으로, 중심부로 나아가시길 축복합니다.
탐욕의 무덤으로 들어가지 않으려면, 지금 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며 만족하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나를 위한 탐욕의 끝은 파멸임을 기억하고, 결단코 그 길로 가지 않는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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