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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창세기22장

창세기 22장

 

22장을 읽으세요.

 

요약: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다. 모리아 땅에 있는 순종(順從)의 산에 오른 아브라함에게 ‘여호와이레’의 은혜를 베푸신다. 이제 아브라함에게 이루어지기 시작한 언약은 구체적으로 그리고 확실히 성취될 것이다.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1절)

 

① 시험(試驗)은 사실 귀찮고,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대상이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나 못하는 학생이나 학교시험을 포함한 모든 시험은 공포(?)의 대상이 된다. 성인들에겐 어떤가, 인생 자체가 시험이 되기도 하고 대인관계(對人關係), 직장생활, 가정생활 등등 삶 자체가 시험이 되기도 한다.

② 시험이 없다면 실력이 향상되지 않을 것이고, 어떤 사람이 진짜인지 여부도 가려내기 어려울 것이다. 시험(예를들면 콩쿠르 같은 것)을 통해 검증되거나 인정받지 못한 유명한 음악가를 본적이 있는가? 아무리 천하제일의 실력자라 자타가 인정할찌라도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면 그는 진정한 실력자가 아니다.

③ 사실 아브라함에게 이번이 첫번째 시험은 아니다. 물론 이번 시험이 본시험이긴 하지만, 그는 이미 예비시험을 통과한 사람이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The Lord said to Abram) 너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12:1)’ 라고 하신, 떠나는 시험을 통과했다. 요즘의 기준으로 볼 때, 떠나는 것은 일도 아니겠지만 아브라함 당시에 떠난다는 것은 죽음을 담보로 하는 커다란 시험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 시험을 잘 통과했다. 두번째 예비시험은 견디는 시험 이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 문제를 틀리기도 해서 올 백(百)은 받지 못했지만 결국 두번째 시험도 패스했다. 모든 시험에 백점을 받긴 힘들겠죠^^

④ 12:1과 같이 22:1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셨다(God said to him)’ 고 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시험문제를 내시는 것을 볼 수 있다.

⑤ ‘시험’을 KJV(tempt)을 제외한 NIV NLT NASB Message 공히 test 를 사용했다. 참고적으로 NLT Bible 의 12:1을 보자. Later on God tested Abraham’s faith and obedience. “Abraham!” God called. “Yes,” he replied. “Here I am.”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시험하시려고,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셨을 때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응답했다.)

 

      ╬ 시험 받지 않은 신앙은 믿을 수 없다. - 애드리언 로져스

       A faith that hasn't been tested can't be trusted. - Adrian Rogers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2절)

 

하나님께서 그냥 이삭을 번제로 드려라 하시지 않으시고, 어찌보면 아브라함의 속이 뒤집어질 수도 있는 수식어를 두번 씩이나 붙이셨을까? 진짜 아브라함에게 시험이라 그러셨나?

② 25년이나 기다리게 하시고 어렵게 주신 아들, 사랑스럽다 못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약속의 독자(獨子)라는 사실을 아브라함에게 상기시키시며, 내게 바치라는(포기하라는) 하나님의 명령(말씀)이다.

③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서 볼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의견을 먼저 물으신게 아니라는 점이다. ‘드릴 수 있겠니?’ 가 아니라 ‘드려라’ 이다.

④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도 ‘기도해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가 아니라 ‘말씀(명령)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가 되어야겠다.

 

 

모리아 땅 (2절)

 

① 아브라함이 거주했던 브엘세바에서 3일 거리에 있었다.

② 대하3:1에 의하면 ‘예루살렘’에 있는 산(山)인 것이 확실하다. 아브라함이 여기서 이삭을 드렸고 숫양으로 번제를 드린 곳이기에, 이곳에 여호와의 성전이 건축되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겠나 생각된다.

 

 

번제로 드리라 (2절)

 

① 번제(burnt offering)는 제물을 불로 태우는 제사 아닌가! 하면서 ‘하나님은 참 잔인한 분인가 보다.’ 이러면 소위 헛발질을 하는 것이다. 아브라함 자신은 몰랐겠지만, 성경은 1절에서 친절히(?) ‘시험’ 임을 예고함으로써 무식한^^ 우리가 헛발질을 하지 않도록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② 이 사건 외에 하나님께서는 사사기 11:29 이하의 ‘입다의 딸 번제’ 와 같이 특별한 경우 외에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라고(물론 사사 ‘입다’는 스스로 서원한 경우임) 하시는 경우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섬기는 어떤 형태의 것도 싫어하시지만, 특히 렘7:31에서와 같이 우상에게 자녀를 불사르는 유다 자손을 책망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③ ‘이삭 번제사건’을 보고, 하나님께서 이삭을 다시 살려주실 것이라고 믿는 아브라함의 ‘부활’에 대한 믿음이 강조되기도 하지만(히11:19), 아브라함이 자기 목숨보다도 더 귀한 것(이삭)이 홀랑 타버리고 재만 남는다 해도 포기할 수 있겠느냐(하나님께 드릴 수 있겠느냐)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된다.

 

 

아브라함이 일찌기 일어나 (3절)

 

길을 떠나는 아브라함의 모습에서 생각해 볼 점은,

①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아브라함이 고민한 흔적이 안보인다는 점이다. 속마음이야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2절의 명령에 이어 3절에 바로 순종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는 뜬눈으로 밤을 새다가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일어나 마지 못해 길을 떠나는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그는 일찍 일어나 길을 떠났다.

② 그는 사라와 상의하지 않았다. 그 사실은 7절을 유추해 보면 알 수 있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일이 복잡해졌을 것이고, 천하의 아브라함이라도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게 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것도 역시 21:10~11을 유추해석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완전한 순종이다.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라는 구절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우리 같으면 그냥 대충 막 떠나서, “하나님 불이 없는데요 나무도 없군요.” 하면서 ‘명령 철회’를 은근히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산으로 가라고 하시니 거기서 나무를 구해서 패고 번제를 드리지 뭐.” 이렇게 하지 않고 완벽히 준비를 하고 길을 떠났다. 두 명의 종을 데리고 가야 할 정도로 모든 것을 챙겨서…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5절)

 

왜 아브라함은 두 사환(使喚)을 멀찍이 떼놓고 모리아 산에 올랐을까? 아무리 상전과 종의 관계라 할찌라도 사람 그것도 후계자를 제물로 바치려는 아브라함을 젊은 친구들(영문성경은 사환을 young men으로 했다)이 제지하려 할 가능성이 있었을 것이다. 지는 상전 아브라함을 막고, 떠오르는 상전 이삭에게 충성을 보일 좋은 기회가 아닌가! “영감님이 노망(老妄) 드셨네요.” 하면서 말이다. 아브라함은 만(萬)에 하나라도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 할 빌미를 만들지 않기 위해 이렇게 일을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8절)

 

① 아브라함은 상습적 거짓말쟁이인가? 앞서 12장에서도 설명한 바와 같이 점심을 안먹었지만 먹었다고 하는 경우와 같이 보면 되겠다. 이것도 거짓말이라고 한다면 할 수 없겠지만 어쨌든 ‘용인될 만한 거짓말’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의 병을 모르는 암환자에게 치료를 위해 별거 아닙니다 라고 거짓말을 했을 때 ‘하얀 거짓말’도 거짓말이다 라고 우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설명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아들 이삭을 바치기로 결정했다. 이삭의 생명 즉 사느냐 죽느냐의 여부는 아버지 선(線)에서 이미 결정된 것이다. 즉 아브라함과 이삭이 모리아 땅으로 떠날 때 이삭은 이미 죽은 목숨이었던 것이다. 그런 이삭에게 ‘제물은 하나님이 준비하실 것이다.’ 라고 했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삭을 제단에 올려야 할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볼 때도, ‘이삭의 생명>거짓말’ 이란 식(式)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지 않는다면 왜 아들에게 거짓말을 하죠? 라고 하기 전에, 왜 아들의 의견도 묻지 않고 제물로 바치려 하죠? 라고 물어야 할 것이다. 교회에 가는 것을 심하게 반대하는 부모를 속이고 교회에 갔다면 이 사람은 거짓말쟁이일까? 아닐까? 부모에게 거짓말하는 것이 두려워 하나님을 믿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아브라함도 “너를 죽여서 바치라고 하신다.” 라고 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바치는 순간에 행동으로 보여줄지언정…

     하나님께 순종하는 최상위(最上位)의 가치가, 이삭에게 상황의 고려없이 소위 '진실'을 말해야 하는 하위(下位)의 가치를 포섭(包攝)한다.

☞ 여기서 필요한 것은 “어떤 거짓말도 합리화될 수 있구나” 라고 단정하지 않는 독자(讀者)의 센스!

② 어쨌든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라고 말함으로써 실제로 하나님께서 준비하시는 역사가 일어났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이렇게든 저렇게든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순종하며 나가야 하겠다!!

 

 

단을 쌓고 (9절)

 

아브라함이 지금까지 쌓으며 하나님께 예배했던 단들과는 다른 면이 있다. 번제용 단이라는 것 말고... 이 단을 쌓는 아브라함의 마음은 어땠을까? 극한의 상황에서 그는 ‘극한의 예배자’가 되었다. 이 후 아브라함은 이전과는 달라진 위대한 사람이 되었다. 최악의 상황, 가장 고통스러운 중에도 아니 하나님이 필요없을 것같이 가장 좋은 상황에서도 당신은 예배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9절)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아브라함이 3절에서 즉각 하나님께 순종한 것과 같이, 이삭은 저항없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순종했다. 이삭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아버지께 순종함으로써 하나님께 간접적으로 순종했다. ‘간접적’이라 해서 그 순종의 강도(强度)가 약한 것은 아니다. 그는 생명을 내놓는 순종을 한 사람이다.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12절)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6절)

 

① 두 번씩이나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 하나님께서 이삭을 받으셨음을 강조하신 것이다.

② 아브라함도 그냥 믿음의 조상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통과할 만한 ‘행위’를 보여드림으로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알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서 이미 언약된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 같은 번성의 복’을 다시 한번 확인하신다. 이렇게 본다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 즉 약속이 이루어지기 힘든 믿음이 될 것이다.

③ 하나님께서는 진정 아브라함의 마음을 모르셔서 ‘이삭 번제사건’을 요구하셨을까? 분명 그의 마음도 아시고 일의 결과도 아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지에 답을 적으라고 하신다. “너의 실력(實力)을 보여주어라.” 하시며, 아브라함의 행함을 요구하시고 우리에게도 본(本)을 보여주시려는 것이다. “너희도 아브라함처럼 행하라.”

 

성경 써 보기

11:17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3절)

 

①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의 마음과 행동을 통해 그의 하나님 경외함을 보셨다. 즉 아브라함이 드린 이삭을 받으신 것(받으시려고 하시다가 그만두신 것이 아님)이다.

②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이삭을 살려주셨기에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숫양을 대신(代身) 드린 모양이 됐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실 때는 대신이 아니다. 이삭을 이미 받으셨고(12,16절), 아브라함이 숫양을 발견해서 드린 번제는 하나님께서 이삭 대신 바치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즉 아브라함의 판단에 의해 드린 일종의 ‘감사제물’이 될 것이다.

③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하나님께서 이삭을 받으시는 대신 숫양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호와 이레 (14절)

 

① “The LORD Will Provide”(여호와께서 공급/제공/준비하신다) 라는 뜻이다.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했으므로 사람들은 지금까지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고 말한다.

② 묵묵히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이지, 감나무 감 떨어지는 식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이 최선을  다해 순종했기에 이런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닌가! 그가 불순종하고 집안에 앉아 있었다면 ‘여호와이레’ 라는 말이 생기기나 했겠는가. 그가 순종의 산(山)에 올랐을 때 여호와께서 준비하셨다!!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16절)

 

이보다 더 확실한 보장이 어디 있으랴! 그냥 말씀하셔도 너무나 정확하실텐데, 스스로 맹세까지 하시며 아브라함에게 12장부터 계속 약속하신 것(12:2~3)을 이루시겠다고 강조 또 강조하신다.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17절)

 

① 아브라함의 후손은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같이 번성할 것이다. 게다가 적들을 물리치고 (성)문의 문짝을 전리품으로 얻는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다.

②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승리하시고, 3:15 의 예언을 성취하셨다. 우리 주님의 승리로 사탄 원수마귀의 머리통은 깨뜨려졌고, 문짝은 주님께서 접수하셨다. 할렐루야!!

③ 예수를 주(主)라 시인하는 우리도 주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사단 원수마귀의 세력과 싸워 이기며 승리하게 된다!!!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18절)

 

① 아브라함이 순종함으로 인해, 그의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다.

② 이제 아브라함은 ‘성숙한 조상’이 되었다. 그의 씨(seed)인 후손들을 택함 받은 백성들로 키우실 것이다. 커다란 민족으로 만드실 것이다. 그 가운데 우리 주님 예수께서 오셔서 천하 만민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 복된 소식을 전해 주실 것이다!

③ 아브라함의 후손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때, 나로 말미암아 그 복음을 듣는 자들이 영원한 복을 얻게 될 것이다!!

 

 

나홀의 자손들 (21~22절)

 

그냥 나홀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아니고, 이제 서서히 아브라함의 후손이 커지기 시작하는 것을 보여주려 함이다. 나홀은 장차 이삭의 아내가 되는 ‘리브가’의 할아버지가 되는 사람이며, 아브라함의 동생이다.

나홀의 자녀는 맏아들 ‘우스’를 비롯하여 ‘부스’ ‘그무(므)엘’ ‘게셋’ ‘하소’ ‘빌다스’ 이들랍’ ‘브두엘’ 까지 8명이다. 이 중 ‘그무(므)엘’은 아람족속의 조상이 되고, ‘브두엘’은 ‘리브가’의 아버지이다.

 

 

[문제22-1] 다음 중 명백히 틀린 것을 고르세요.

① 아브라함은 두 명의 종(two servants)을 대동하고 길을 떠난 것으로 봐서 번제에 쓸 물품을 온전히 준비했다고 볼 수 있다.

② 브엘세바에서 모리아 땅까지는 삼 일 길이었다.

③ 하나님께서는 숫양이 준비된 곳을 이름하여 ‘여호와이레’라고 하셨다.

④ 이삭을 죽이려는 아브라함을 여호와의 사자가 다급히 제지했다.

⑤ 여호와의 사자가 두번째로 아브라함을 불러 ‘여호와의 말씀’을 전했다.

 

 

[문제22-2] 나홀의 첩 ‘르우마’가 낳지 않은 자는?

① 데바  ② 빌다스  ③ 가함  ④ 다하스  ⑤ 마아가

 

 

[문제22-3] 다음 중 가장 맞지 않는 것을 고르세요.

① 모리아 땅의 이 산은, 솔로몬 당시 여호와의 전이 건축된 지역과 전혀 상관이 없는 곳이다.

② 아브라함이 두 명의 사환에게 경배하러(worship) 간다고 얘기했는데, 실제로 그런 상황이 일어났다.

③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실 것이다.’ 라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는데, 하나님께서 정말로 준비해 놓으셨다.

④ 사자(使者)를 통해 아브라함에게 주신 여호와의 말씀은 “네 씨가 그들의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였다.

⑤ 하나님은 두 번씩이나 ‘이삭’을 받으셨음을 말씀하셨다.

 

 

[문제22-4] 다음 중 맞는 것을 고르세요.

① ‘나홀’과 ‘밀가’ 사이에는 일곱 명의 아들이 있었다.

② ‘아람’의 아버지는 ‘브두엘’이다.

③ ‘밀가’와 ‘롯’은 사촌간(四寸間)이다.

④ ‘이삭’과 ‘브두엘’도 사촌간(四寸間)이다.

⑤ ‘밀가’의 증조부가 ‘데라’이다.

 

 

암송할 구절

1절

2절

8절

12절

14절

16절

17절

18절

 

 

정답

[문제22-1] ③

[문제22-2] ②

[문제22-3] ①

[문제22-4] ④

 

 

Copyright © 2009 by Paul Han

 

blog.daum.net/happy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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