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2장
창42장을 천천히 읽으세요.
요약: 야곱의 열 아들들이 아버지에게 떠밀려 이집트로 식량을 구하러 내려가게 된다. 그들은 이집트의 총리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한다. 요셉은 자신의 형들을 정탐꾼으로 몰아가며 가나안 고향 집에 있는 막내 베냐민을 데려오게 한다. 그러나 아버지 야곱은 베냐민을 보내지 않으려 한다.
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1절)
① 야곱은 어떻게 이집트에 곡식이 있는 것을 봤다는 것인가? 그는 현재 130세쯤 된 노인이었으므로 직접 이집트에 가보았을리는 없을 것이다. 야곱은 이집트를 왕래하는 상인들이나, 주위에서 식량을 사온 사람들로부터 (이집트에 곡식이 많음을) 들어서 알게 되었다(learned, heard)는 뜻이다(2절 참조). 즉 그들이 사온 식량을 보고(saw), 이집트에 곡식이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게 되었다.
② 베냐민을 제외한 야곱의 열 아들들은 집안에 식량이 다 떨어져가는데도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식으로, 서로 눈치만 보면서 버티고 있었던 것 같다. 참다못한(?) 아버지가 드디어 한 말씀 하게 된다.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관망만 하느냐(staring at one another)”. 증손자까지 거느리고 있었을(46:12 참조) 야곱은 130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할 수 밖에 없는 고달픈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③ 아브라함도 기근을 피해 이집트에 간 적이 있고, 이삭 당시에도 기근이 있었다. 야곱 때의 기근은 상황과 규모등에 있어 앞 시대의 기근과는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개인적 차원에서 살펴본다면 세 명의 족장 모두 기근을 당해 어려움을 겪었다. 특별히 선택받은 족장들에게 무슨 기근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이 땅을 사는 동안 우리에게도 종종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기억하고 위로를 받기로 하자.
요셉의 형 십 인이 애굽에서 곡식을 사려고 내려갔으나 (3절)
왜 야곱의 열 아들은 같이 내려갔나?-- 아버지 야곱의 곡식을 사오면 살고 죽지 않으리라는 얘기에 등떠밀리듯 해서 요셉의 10명의 형들은 이집트로 내려가게 된다. 이 때 곡물가(穀物價)는 큰 흉년으로 말미암아 천정부지로 올랐을 것이기에 상당히 많은 돈을 가지고 내려갔을 것이다. 이 돈으로 산 식량도 역시 귀했을 것이기에 신변 및 재산보호차원에서 요셉의 형들이 전부 동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에는 가축등의 재산(동산動産)이 오늘날의 부동산과 같이 중요하게 취급되었을 것이므로, 종들에게 시키지 않고 자식들이나 본인이 직접 관리했을 것이다. 그래서 야곱의 아들들이 함께 양을 치러 다녔던 것이다. 이집트로 거금을 들고 곡식을 사러가는 것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물론 종자(從者)들이 그들과 동행했을 가능성은 있다.
야곱이… 베냐민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렵다 함이었더라 (4절)
요셉을 잃은 후 아버지 야곱은 사랑했던 아내 라헬이 고생하고 낳은 막내 베냐민을 애지중지하며 끼고 살았을 것이다. 들판에서 짐승에게 희생된 요셉을 생각하고, 혹여 막내아들이 해(害)harm를 입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아버지는 이집트로 내려가는 형들과 동행시키지 않는다. 막내아들도 세상을 배우고 일도 배워야겠지만 만일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생각한다면 다른 아들들도 믿을 수 없고 그냥 내가 데리고 있는게 상책이다 생각했으리라.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6절)
①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37:8) 하며 미워하던 동생에게 (요셉인지 몰랐지만) 형님들은 땅에 엎드려 절하게 된다. 사실 이 형님들에게 자신들이 엎드려 절한 인물이 요셉인지 알았느냐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요셉이 곡식단이 절하는 꿈을 꾼 의미가 그의 신분이 높아지고 형들은 그 앞에서 엎드리는데 있기 때문이다. 현재 그가 최강대국 이집트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총리로 서 있으므로 설령 그의 형들이 그가 요셉인줄 알았더라도 엎드려 절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② 이 형님들은 뒤에서도 계속 절하게 된다(43:26,28). 후일 아버지 야곱이 죽은 후, 그 형님들이 요셉에게 와서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하며 다시 한번 납작 엎드리게 되는데서 재삼 확인된다. 형님들이 요셉의 종이 되었다. 꿈은 이루어진다★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9절)
① 자신들의 동생임을 알지 못하고 엎드려 절하는 형들을 보며, 요셉은 10여 년 전 꾸었던 곡식단 꿈을 생각했을 것이다. 앞으로 5년은 기근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는 이제 가나안에 있는 자신의 가족들을 구할 계획을 세웠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자신의 형들을 꼬투리 잡아 옛날의 잘못을 끄집어 내고(21절), 자연스럽게 상처가 치유되며(45:2 참조), 용서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45:5).
②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내가 요셉이니 놀라지 말고 어서 가서 아버지를 모시고 이리로 오시오’ 라고 하지 않고, 막내를 데리고 오라 말라 하는 등 어찌보면 번잡한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첫째, 13년 전 동생을 미워하여 죽이려하다가 마지못해 팔아먹은 그 사건이 얼마나 아버지와 요셉 본인을 힘들게 했던 것인지 알려주려는 목적이다. 왜냐하면 막내 베냐민을 이집트로 데려오라는 그 분부로 얼마나 집안이 시끄러웠는지를 보면 알게 된다. 맏형 르우벤은 자신의 두 아들까지 담보로 내놓고 베냐민을 이집트로 데려가려 한다(37절). 둘째,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목적이다. 요셉이 얼마나 큰 권력과 영화를 소유하고 웬만한 소국(小國)의 왕보다 더한 실력자인지를 그 형님들은 이집트에 머무르면서 보게 되었다(45:8,13 참조).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37:8) 비웃던 형님들에게 참으로 꿈이 이뤄졌음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독실한 자니 (11절)
‘독실한’은 true(진실한), honest(정직한) 의 뜻인데, 요셉의 형님들이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이란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들은 아버지를 한탕 크게 속여먹은 자들이 아니었던가. 지금 그들은 요셉 앞에서 자신들의 진실함을 주장하고 있지만, 동생에게 그렇지 않음을 추궁당하고 있다. 즉 그들은 정탐(spy)은 아닐지라도, 오래 전 아버지를 속인 사건이 그들의 양심을 찔렀을 것이다. 막내 동생을 데려오라는 말에 생뚱맞게도 옛날에 동생을 팔아먹은 일이 형제간에 동시에 떠오르는 것에서 알 수 있다(21절 참조). 참고적으로 개역개정은 ‘독실한’을 ‘확실한’으로 했는데, 한 사람의 아들들인 것이 확실하다는 의미로 바꿔준 것으로 보이는데, 잘못된 개정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정직함(스파이가 아닌 것)을 주장하려는 의도이지, 한 사람의 열 아들이 확실하다는 것을 주장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15~16절)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18절)
하나님의 사람 요셉이 이집트 왕 파라오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다니…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고, 현재 요셉이 파라오의 신하로서 말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맹세엔 본심 즉 사랑이 담겨 있지 않음을 보게 된다. 요셉은 뒤에서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하면서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알려준다. 여기엔 진심 즉 사랑이 담겨 있다.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20절)
이 부분은 20절과 21절 사이를 매끄럽게 연결해 주지 못하는 부분이다. NLT 바이블이 적절하게 해석해 주고 있다. ‘To this they agreed.’(이렇게 하는 것에 그들이 동의했다).
그의 피 값을 내게 되었도다 하니 (22절)
어떻게 누가 요셉의 핏 값을 낸단 말인가? 갑자기 웬 뚱단지 같은 이야기인가. 답은 21절에 나와 있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distress)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아버지는 이집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위험한(?) 상황을 알지 못했을 때도 ‘베냐민’을 꼭 끼고서 보내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총리께서는 한 사람을 볼모로 옥에 넣어두고 그 문제의 막내를 데려오라는 것이다. 누가 볼모로 잡혀야 한단 말인가. 아버지를 볼 때 다른 놈이 죽더라도 막내를 보내지 않을게 뻔하니 말이다. 이 때 형님들은 요셉이 팔려 갈 때의 괴로움(distress)이 이랬겠구나 하며 자중지란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것을 맏형 르우벤이 ‘그의 핏 값을 내게 되었다’ 라고 적절히 표현한 것이다.
요셉이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시므온을 취하여 그들의 목전에서 결박하고 (24절)
① 동생을 팔아먹고 문득문득 그 일이 생각나 양심에 가책을 받았을 형님들이었겠지만, 막상 요셉인줄은 상상도 못하고 히브리 말로 자신들을 자책하는 모습을 본 요셉은 나가서 울음을 터뜨린다. 지나간 날들과 고생한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라 더 이상 감정을 억제하지 못했으리라…
② 왜 시므온이 볼모로 남게 되었을까? 이런 상황에서는 연장자를 붙잡아 두는 것이 순리였을 것인데, 아마도 르우벤은 맏형으로 동생들을 책임지고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가야 하는 등 일도 많고, 22절에서와 같이 요셉을 살리려 노력했던 점 등이 참작되지 않았겠나 생각된다. 그래서 둘째 형인 시므온이 이집트에 남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이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 일을 행하셨는고 하고 (28절)
그들과 그 아비가 돈뭉치를 보고 다 두려워하더니 (35절)
주눅이 들어 돌아가던 형님들은 곡식 대금이 자루에 넣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혼이 나서 떨었다. ‘혼이 나서 떨었다’는 ‘가슴이 철렁해서’(hearts sank) 몸이 덜덜 떨리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얼마나 놀랬는지 하나님께서 어째서 이렇게 하셨을까? 라고 까지 말하게 되었다. 집에 돌아온 자식들에게 소식을 듣고 각자의 자루에서 돈뭉치를 확인한 아버지까지도 두려워하게 된다.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36절)
연로한 아버지 야곱은 요셉처럼 시므온도 잃게 된 것으로 생각했다. 이집트에서 돌아온 자식들에게서 둘째는 볼모로 잡혀있다고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둘째 아들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했나보다. 이 부분을 NLT 바이블이 가장 적절하게 표현했다. “Joseph has disappeared, Simeon is gone…”(요셉은 실종되었고(사라졌고), 시므온은 이집트로 가서 이제 없는데…).
너희가 나의 흰 머리로 슬피 음부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 (38절)
요셉이 없어졌을 때도 아버지 야곱은 자신이 음부로 내려가 죽은 아들에게로 가리라 했었다. 이제 사랑했던 아내 라헬의 하나 남은 소생 베냐민마저 이집트로 가야한다고 했을 때, 그에게 재난(harm)이 미칠까봐 아버지는 두려워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자신은 음부(Sheol)로 내려가는 것이 될 것이라 말하고 있다.
[문제42-1] 다음 중 성경 본문의 내용과 다른 것을 고르세요.
① 야곱은 이집트에 곡식이 있음을 들었다.
② 가서 곡식을 사오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③ 요셉의 형 열 명이 함께 식량을 사러 갈 때, 가나안 사람들도 식량을 사러 갔다.
④ 요셉은 형들이 식량을 사러 왔을 때 누군지 바로 알아 보았다.
⑤ 요셉은 막내 아우를 데려오기 곤란하다는 얘기를 듣고 그들 모두를 3일 간 가뒀다.
[문제42-2] 다음 중 틀리다고 생각되는 것을 고르세요.
① 볼모 한 사람을 남기고 가서 막내 동생을 데려오라는 요셉의 말을 듣고 형들은 지난 날 팔아먹은 동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② 요셉과 형들 사이에는 통역(interpreter)이 있었다.
③ 요셉은 시므온을 다른 형제들이 보는 앞에서 결박하게 했다.
④ 요셉은 명을 내려 형들이 곡물 대금으로 가져 온 돈을 자루 깊숙이 넣게 했다.
⑤ 길 양식(provisions for the journey)이란 집으로 돌아가면서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식량이나 조리된 음식을 말하는 것이다.
암송 구절
18~21절
38절
정답
[문제42-1] ⑤
[문제42-2] ④
Copyright © 2009 by Paul 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