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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출애굽기24장

출애굽기 24장

 

24장을 천천히 읽으세요.

 

요약: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아론과 그의 두 아들 및 장로 70인을 데리고 산에 올라와 경배하라고 하신다. 모세는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단을 쌓고 열 두 기둥을 세우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다.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준행하겠다는 이스라엘에게 모세는 언약의 피를 뿌린다. 산에 오른 모세 일행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신다.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한 돌판을 받으러 산에 오른 모세는 사십 주야를 머무른다.

 

 

본 장의 의미와 중요성

 

① 하나님의 언약이 요식행위를 통해 효력을 발생하게 되었다 à 단을 쌓고 지파대로 열 두 기둥을 세우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으며 그 희생제물의 피를 반은 단에 뿌리고 반은 백성들에게 뿌려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언약이 유효하게 되었다(4~8절). 물론 ‘언약’(covenant)의 뜻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그들의 후손에게 하신 (일방적) 약속 이므로 항상 유효한 상태로 있었지만, 이제 이스라엘이 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겠다고 선언하고, 언약의 피를 뿌림으로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은 실제적으로 지금부터 실행가능하고 지켜야 하는 것이 되었다. 모세를 통해 한 이스라엘의 행위를 ‘비준(批准)’ 으로 표현한 경우가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옳은 표현이 아니다. 비준은 대등한 나라 사이에서 조약따위를 승인하는 행위인데, 하나님의 언약을 이스라엘이 대등한 위치에서 승인/확인할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②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했고, 이것이 언약서이다(4절, 7절) à 여호와의 말씀을 직접 들은 모세가 기록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려졌다는 사실은, 소위 구두계약도 계약이지만, 계약서가 작성된 계약이 양쪽에 더 무게 있고 확실한 계약이 되는 것처럼, 이제 이스라엘은 언약서를 들을 때마다 하나님의 언약을 더 지키려고 애써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읽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도, 기록자들이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에 감동되어 썼기에 정확하고 흠이 없는 완벽한 생명력 있는 말씀이 되는 것이다. 성경은 죽어 있는 글자가 아닌,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③ 하나님의 모습-엄밀히 말하면 모습이 아니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주변-을 조금이나마 보여주셨다(10절) à 번제로 죄악을 씻고 화목제로 거룩하신 여호와 앞에 나아갈 수 있는 모양과 조건을 갖춘 후 산에 오른 사람들에게 임하셔서 하나님은 ‘실재하시는 분’ 이심을 알려주신다. “나는 막연한 하나님이 아니다. 너희들에게 나의 모습을 보여줄 순 없지만, 내 발  밑만 살짝 봐도 내가 살아 있는 하나님임을 알게 되리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임하신 모습을 조금이나마 그려볼 수 있음이 매우 유익하다. 신자나 불신자를 막론하고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살아계시고 실재(實在)하시는 분이심을 이 구절을 통해 받아들여야 한다.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과 함께 여호와에게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1절)

너 모세만 여호와에게 가까이 나아오고… (2절)

 

① 이스라엘이 이집트 땅을 떠난 달은 아빕 월(1월)이었고, 시반 월(3월)에 시내 광야에 도착하였다(19:1). 이 이후로 이스라엘은 해가 바뀌도록 거기에 계속 머무른 것으로 보인다. 출애굽 제 2년 차 1월 1일에 성막이 세워지고, 동 년 2월 1일 이스라엘 자손을 계수하라고 하실 때까지 이스라엘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시내 광야에 들어오게 하신 이후 해가 바뀌도록 한 장소에 머무르게 하셨다(40:17, 민1:1 참조). 19장에서 본대로 여호와께서 강림하신 이후, 20장에서 십계명을 주셨고, 21~23장을 통해서는 율례와 법을 주셨다.

② 19장의 여호와 강림 사건은 일차적으로 모세를 위한 것임이 명백하다(19:9). 또한 본 절과 19장의 사건은 별개의 것임이 확실하다. 시내 광야의 장기체류 기간 중에 모세는 여러 번 여호와의 부르심을 받고 시내산에 올랐다고 하겠다. 이는 19장에서 2번, 24장에서 2번, 34장에서 1번 등 성경에 명확히 기록된 것만 5번이 된다. 이것은 산에 올라가 하나님을 뵙고 말씀을 듣거나 십계명 돌판을 받은 횟수이고, 1~2절과 같이 산에 오르지 않고도 수시로 여호와의 말씀을 들었음을 알 수 있다.

③ 19장에서는 처음 모세만이 산에 올라 여호와를 만나 뵈었고, 내려와서 아론과 함께 다시 산에 올랐는데(19:24), 본 장에서는 아론과 그의 두 아들 및 장로 70명도 모세와 함께 산에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라고 하신다. 19장에서 아론과 함께 산으로 올라오라고 하신 것은, 그가 출애굽 처음부터 모세를 도와 임무를 수행했기에 그렇게 하셨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론의 장 차남이 포함되었으므로, 이제 아론의 집안에 뭔가 임무를 부여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짐작하게 된다. 그것은 뒤에 나오는대로 제사장 직분의 수행이다. 여호와를 뵈러 올라가기 전에 모세는 열 두 기둥을 세우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후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언약의 피를 뿌려 증거를 삼는다. 그런 후 백성을 대표한 장로 70인이 모세와 함께 산에 오른다.

④ 성경 인물 상 그 정도와 횟수에 있어서, 여호와를 대면할 정도로 가까이 그리고 자주 나아가 본 자는 모세가 유일하다. 그만큼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은 사람이었고 하나님께 부응하는 종이었다. 아론도 이스라엘의 장로들도 하나님이 계신 산에 오르는 것까진 허용되었지만, 여호와 앞에 가까이 가는 것은 금지되었다.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고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3절)

 

① 모세가 ‘와서’ 라고 한 것은 그의 거처가 백성들과 떨어져 있다는 의미보다는 하나님의 말씀(명령)을 듣고 ‘오다’ 의 뜻이라고 하겠다, 5절의 청년들을 ‘보내어’ 도 마찬가지인데, 제단이 있는 장소로 물리적으로 ‘보내어’ 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여호와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는 것을 ‘구별한다’ 는 뜻이 강하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든지, 예배를 드린다든지 하는 것은 우리의 ‘구별된’ 모습이나 태도를 전제한다고 하겠다. 하나님과 관계된 모든 일은 세상과 구별된다!

②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 는 이집트를 떠날 때부터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고 지키길 원하신 모든 말씀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것을 몇 가지 다시 나열해 보자. 무교절을 지키라(12:17), 이스라엘 자손 중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13:2), 만나를 통해 안식일을 지키라(16:29), 20~23장의 십계명을 포함한 모든 말씀 등이다. 이에 더하여 장차 임하실 여호와의 말씀도 당연히 포함된다고 해야 한다.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 단을 쌓고 이스라엘 십 이 지파대로 열 두 기둥을 세우고 (4절)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번제와 소로 화목제를 여호와께 드리게 하고 (5절)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6절)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7절)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8절)

 

① 모세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기록한 것이 언약서가 되었음은 위에서 보았고, 그 언약서를 기초로 하여 모세오경이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다.

②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는 야곱의 열 두 아들을 통해서 형성되었다. 연장자 순으로 다시 한 번 기억해 보자.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단 납달리 갓 아셀 잇사갈 스불론 요셉 베냐민 이다. 지파(支派 tribe)는 ‘근본에서 갈라져 나간 파’ 의 뜻으로, ‘tribe’ 는 이스라엘 12지파 중의 한 지파를 말한다. 그런데 “야곱의 12아들이 이스라엘의 12지파는 아니다” 라고 한 경우도 있다.(성경의 맥을 잡아라 p145, 문봉주 저, 두란노 간) 여기서는 땅을 분배받지 못한 레위에다 요셉을 더하여 이 두 사람 대신에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땅을 차지했다고 하면서 열 두 지파의 자리에서 레위와 요셉을 빼고 요셉의 두 아들로 대치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는 支派를 地派로 착각한데서 온 오류이다. 地派라는 말 자체도 없거니와, 레위가 다른 지파들과 같은 방식으로 땅을 차지하지 못한 것은 그들의 직분에 따른 결과요 하나님의 계획이었지, 그렇다고 해서 레위 지파가-레위 족속이라고 불러도 마찬가지- 이스라엘의 12지파에서 탈락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야곱의 축복에 따라서 요셉의 두 아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했다고 해서 한 지파(요셉)가 없어지고 두 지파(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③ 앞의 19장에서 제사장에 대한 언급이 있었으므로 하나님께 대한 제사가 있었으리라 추정되지만, 지금 모세는 왜 공식적이고 중요한 첫번째 제사를 젊은이들(young men)을 보내서 드리게 했을까? 이것은  아마도 초기 광야 교회(행7:38)의 업무 분장이라고 보면 좋겠다. 청년들은 모세의 지시에 따라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는 임무를 수행했다. 일단 이 부분에선 아직 제사장 직무가 아론 집안(레위 지파)에 주어지지 않았으므로 그 구분이 없이 젊은이들이 제사를 드린 것으로 보기로 하자.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장로 70명은 산에 올라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 청년들이 한 일이나 장로들이 한 일이나 다 중요한 일이므로 어느 것이 더 중한가 하는 얘기도 접어두기로 하자. 주의깊게 살펴 볼 것은 지도자 모세의 지시를 따라 젊은이들이 맡겨진 일을 수행한 사실이고, 장로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모세를 따라 산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물론 거룩한 하나님 앞에 서는 일을 백성을 대표하는 중량감 있는 장로들이 수행하도록 하신 점은 눈여겨 봐야 한다. 현대 교회에도 이것은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교회 내에서는 청년과 장/노년 층이 조화롭게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이것은 평등의 문제는 아니다(☜이게 중요). 그렇기에 청년회장의 의견이 당회원인 장로의 의견과 같게 취급돼야 한다고 주장하면 안된다. 물론 청년회장의 견해를 무시하라는 것도 아니다. 청년층이 장노년층을 구시대적이라고 몰아부쳐도 안되고, 반대로 장노년층이 젊은층을 향해 아무 것도 모르는 애들 취급을 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모두 힘을 합쳐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오늘날 특수한 교회 조직과 예배 형태가 종종 등장하고 있다. 예를들면 청년만 모이는 교회, 콘써트 형식의 예배를 강조하는 교회, 교회를 몇 개의 가정으로 쪼개고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 교회 등인데, 본 장에 따르면 그리 권장할 만한 조직이나 형태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④ 여러 ‘양푼’(basin 큰 그릇)에 피를 담아 백성들에게 뿌렸으므로, 한 그릇에만 담아 형식적으로 뿌린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한다. 이것은 열 두 지파를 따라 열 두 기둥을 세운 것과 같이, 각 지파대로 언약의 피를 뿌렸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⑤ 위에서 얘기한대로, 언약의 피를 통해 하나님과 이스라엘 자손 간의 언약은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유효하게 되었고, 언약의 피뿌림 이후부터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지켜져야만 하고 즉시 실행가능한 언약이 되었다. 메시야 언약과 관련하여 이 언약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 모세가 뿌린 언약의 피로 인해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영원한 관계가 이뤄진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도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게 되었다(히10:19).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니 그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더라 (10절)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더라 (11절)

 

① 3장에서부터 모세가 만나 뵌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17:6) 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대면하시는 방법은 ‘말씀 대면’ 이다.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33:20). 이럴진대 모세 외의 다른 사람들은 어떠하리… 이제 모세를 비롯하여 그 날 산에 오른 모든 자들이 뵌 하나님의 모습-위의 설명 참조-은, 임재하신 하나님의 주변 모습이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발 밑은 청옥 즉 사파이어(sapphire) 를 편 듯하고-사파이어로 도로포장을 한 것 같고- 하늘 그 자체처럼 청명했다.

②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 은 ‘이스라엘의 귀인들’, ‘이스라엘의 고귀한 자들’ 의 의미이다. 본 절은 아론을 포함한 모든 자들을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고상한 자들이라고 지칭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에서는, 손을 대셔야 마땅하지만 그리하지 않으셨다는 뉘앙스가 느껴진다. 그렇다. 제 아무리 이스라엘을 대표할만한 존귀한 존재들이라 할찌라도 하나님 앞에 나설 수 없는 부족한 존재들이라는 사실이다. 성경은 이 점을 분명히 지적한다. 메시지 바이블은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He didn’t hurt these pillar-leaders of the Israelites’(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이 중심 지도자들을 상하게 하지 않으셨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시는 복을 누린다. 이는 하나님의 언약을 이스라엘이 지키겠다고 하며 수락함으로써, 언약이 성립된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축하받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12절)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라 아론과 훌이 너희와 함께 하리니… (14절)

 

① 하나님의 언약을 수용한 이스라엘은 약속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이스라엘은 지도자 모세에게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배워야 한다. 이제 그 교과서(textbook)를 만들어 주시려고 모세를 다시 부르신다. 그런데 이 교과서의 재질은 양피같은 것이 아닌 돌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돌에 언약의 말씀 즉 십계명을 새겨 주셨다(34:28)는 것에서, 이 계명들이 중요함을 알 수 있고 게다가 직접 써 주셨기에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이 반드시 지키기를 원하시는 말씀임을 알게 된다.

②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본 장에서는 모세가 시내 산에 두 번 오른 것으로 본다. 즉 11절 이후 모세 일행은 산을 내려갔다가, 12절의 하나님 명령에 따라 모세는 여호수아를 대동하고 다시 산에 올랐다고 본다. 2절에 의하면 백성들은 산에 올라오는 것이 금지되었고, 모세는 14절에서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32:1에 따르면 백성과 아론이 함께 있음을 보게 된다(참고적으로 32:1에는 ‘아론에게 이르러’ 라고 했는데, 이는 ‘아론에게 모여’ 가 정확한 의미가 된다). 따라서 14절의 ‘여기서’ 는 ‘산 아래에서’ 가 된다. 반면에 장로들과 함께 산에 오른 모세가 그들을 뒤에 남겨두고 12절의 명령대로 시내산 정상으로 올랐다고 보는 해석도 있음을 밝혀둔다.

③ 아론과 훌은 17장의 아말렉과의 전투에서처럼 모세를 돕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장로들에게 일이 생기면-백성들에게 일이 생긴다는 의미도 됨- 아론과 훌에게 가야 한다. 일부 견해에 의하면 훌은 미리암의 남편이었으리라 추측하기도 했다. 이렇게 본다면 아론과 훌은 처남 매부지간이 된다.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15절)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육 일 동안 산을 가리더니 제 칠 일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16절)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같이 보였고 (17절)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 (18절)

 

①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공무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런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6일씩이나 산 위에서 기다리게 하신다. 이게 하나님의 방법이다. 하나님과 40일씩이나 함께 할 모세를 그 산에서 준비하며 기다리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만나자고 하시는데도 목하 가장 중요하고 내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일이 있어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릴 수 없는가? 모세를 찾으시는 하나님께로부터 해결책을 찾으라. 나보다 수 천 수 만 배 더 바빴을 모세도 기다리게 하셨음을 잊지 말라!

② ‘맹렬한 불’ 은 ‘consuming fire’(타오르는 불) 또는 ‘devouring fire’(활활타는 불) 로 번역된다. 산 위에 임하신 여호와의 영광을 표현한 모습이다. 신4:24, 히12:29 에서는 이 ‘consuming fire’ 를 ‘소멸(燒滅)하는 불’ 로 번역하고 있다. 한자를 병기해주지 않고 한글만 쓴다면 ‘소멸(消滅)하는 불’ 로 오해할 소지도 있다. ‘소멸하는 불’ 은 모든 것을 태워 없앨 맹렬한 불로서 여호와의 영광을 나타내는 표현이므로, ‘타오르는 불’ 이렇게 쓰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가사> 오 주님 주는 소멸하는 불(à타오르는 불) 열방이 주 말씀에 떠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영광으로 임하소서…(영원한 왕 예수 中에서, 다윗의 장막 7집)

이스라엘을 광야에 남겨둔 채 지도자 모세가 자리를 비우는 사건은 진짜로 이스라엘에게 사건을 일으켰다. 피로 세워진 하나님의 언약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로 말미암아 심하게 훼손된다. 이스라엘 왈, 우리만 여기에 남겨놓고 어디간거야? 이제 우린 어떻게 하지?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드는 사건이 발생하자 모세는 산에서 내려왔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다시 산에 오른다. 그렇다면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하신 사십 일 사십 야를 어떻게 봐야 할까? 18절과 34:28에 의하면 40주야인 것은 확실하다. 이 부분을 자세하고 확실하게 알게 하는 말씀이 신9:11  이하이다. 이스라엘이 금송아지 사건으로 범죄하고 있었을 때 이미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있었던 기간이 사십 일 사십 야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모세가 산에 머무른 전체 기간은 여호와께서 부르시기 전에 기다린 6일을 합하여 46일이 된다고 하겠고, 다른 돌판을 가지고 산에 오른 기간은 별도로 추가되어야 한다. 

 

 

[문제24-1] 다음 출24장에 대한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세요.

① 아론 등은 여호와의 산에 올랐지만, 멀리서 경배해야 했다.

② 산에 오른 자들은 모세와 아론을 제외하면, 백성을 대표하기는 했지만 지도자 위치의 사람들은 아니었다.

③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이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④ 모세가 언약의 피를 반은 단에 반은 백성에게 뿌렸다.

⑤ 모세가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은 ‘언약서’가 되어 백성들의 귀에 들려졌다.

 

 

[문제24-2] 다음 출24장과 관련하여 틀린 것을 고르세요.

① 모세가 뿌린 언약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

② 시내 산에 오른 자들이 뵌 하나님의 형상은, 실제로는 영광의 하나님께서 임하신 주변의 모습이라고 해야 한다.

③ 하나님의 발 아래는 하늘 색 그 자체인 사파이어가 펼쳐진 것 같았다.

④ 이스라엘의 귀인들은 하나님과 함께 먹고 마셨다.

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않으셨다는 것은 그들을 치지(hurt) 않으셨다는 뜻이다.

 

 

[문제24-3] 다음 출24장 내용 중 명백히 틀린 것을 고르세요.

① 모세가 없는 동안 아론과 훌이 백성을 지도했다.

②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는 동안 산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③ 모세는 바로 여호와께서 임하신 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소멸하는 불’ 은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난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모든 것을 태워 없앨 정도로 맹렬한 불의 의미이다.

⑤ 산 위에 임한 여호와의 영광이 산 밑의 이스라엘 자손에겐 맹렬한 불같이 보였다.

 

 

핵심 한 줄

 

⒜ 언약서가 낭독될 때 즉 말씀이 선포될 때 순종을 다짐하라.

⒝ 모세가 뿌린 언약의 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가 특별한 관계가 됐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 하나님과 내 사이도 그렇게 됐다.

⒞ 율법과 계명의 핵심이 십계명이므로 하나님께서는 돌판에 직접 새겨 주셨다.

⒟ 하나님께서 찾으실 때는 만사를 제껴놓고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한다.

⒠ 활활 타오르는 불 같은 여호와의 영광을 사모하라.

 

 

암송 구절

7~8절

10절

12절

17~18절

 

 

정답

[문제24-1] ②

[문제24-2] ④

[문제24-3] ③

 

 

적용

㉮ 모세가 뿌린 짐승의 피가 어떻게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게 되는지 설명해 보자.

㉯ 누구도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는 없다. 그러나 10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분이요 실체를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10절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인정할 수 있는가?

㉰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한 돌판을 주시는 의미는 무엇인가?

 

 

 

Copyright © 2010 by Paul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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